
“나는 아들의 장례식 이후 오늘 또 다른 장례식을 봤다. 정의로운 평화를 바라는 내 희망은 오늘 죽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령 알래스카주에서 열린 미러정상회담 생중계를 지켜본 우크라이나 키이우 주민 나탈리아 리페이(66)가 이렇게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그의 34세 아들은 우크라이나 제79여단에서 복무하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서 전사했다. 도네츠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휴전의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철수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바로 그 지역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1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깔아준 레드카펫을 밟았다. 뿐만 아니라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따뜻한 미소와 악수로 맞이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워싱턴에서 케네디센터 아너스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알래스카 회담 이후 푸틴 대통령이 전쟁 중단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가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 매우 심각한 결과(very severe consequences)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미러정상회담에서 포착된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합의가 도출되지 못했음에도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미·러 두 정상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전쟁 범죄 혐의가 제기됐음에도 미국에서 따뜻하게 환영받는 모습에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경악을 표했다”고 보도했다. 리페이는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이 국제적 고립을 해소하고 승리한 날”이라며 “나는 새로운 상실감을 느꼈다”라고 했다.
키이우 주민 카테리나 푸첸코(30)는 AFP통신에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편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트럼프는 푸틴과 친구인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우크라이나 북동부 도시 하르키우에서 극장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파블로 네브로예프(38)도 “쓸모없는 회담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와 관련된 문제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대통령이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작가인 이리나 데흐카흐(50)는 “협상이 있든 없든, 하르키우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다”며 “지금도 하르키우에서는 거의 매일 포격이 쏟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6일 성명에서 “오는 18일 미국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전쟁 종식을 논의하는 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시 오는 22일 전에 미국-우크라이나-러시아 3자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영토 양보에 대한 우크라이나 측의 거부 입장이 완강한 만큼, 3자 정상회담 추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