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렌 파월이 훌루 오리지널 시리즈 ‘채드 파워스’로 돌아왔다. 스포츠 코미디 속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배우 글렌 파월이 주연은 물론 공동 제작과 각본까지 맡았다. 지난 9월 30일 디즈니+에서 첫 공개된 이 작품은 전직 풋볼 스타 러스 홀리데이가 특수 분장을 통해 ‘채드 파워스’라는 새로운 인물로 변신, 재기를 노리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다.
표면적으로는 스포츠 코미디지만, 그 안에는 자아 성찰과 두 번째 기회를 향한 진지한 고민이 녹아 있다. 영화 ‘히트맨’에서 킬러 행세를 하는 대학교수 역으로 ‘천의 얼굴’을 보여줬던 글렌 파월의 색다른 연기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도 그 속엔 자신을 끊임없이 재정립하고자 하는 배우의 진심이 있다. 그리고 그 진심은, 오늘도 누군가에게 두 번째 기회를 꿈꾸게 만든다.
최근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글렌 파월은 자신에 대해 “사실 뭐 하나 특별히 잘하는 건 없다. 다만 언제나 시간을 들여 연습하고, 어떻게든 관객을 ‘속일 수 있을’ 정도로는 해낸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연기는 항상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직업이기에 오히려 나에게 딱 맞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진짜처럼 보이기만 하면 된다”며 웃어 보였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미식축구(풋볼)는 미국 대중문화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 스포츠다. ‘채드 파워스’는 이러한 인기에 편승한 듯한 인상을 주지만 가볍게 보기엔 제격이다. 단순한 스포츠 코미디를 넘어 메시지도 있다. 실수를 반복한 한 인물이 두 번째 기회를 얻기 위해 새로운 얼굴과 정체성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로 반성 대신 가면을 선택한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가면을 통해 성장을 이룬다.
글렌 파월은 “예전부터 ‘가면을 쓰고 무언가를 배운다’는 설정에 끌렸다”며 영화 ‘투씨(Tootsie)’를 언급했다. 그는 “더스틴 호프먼이 여장을 통해 여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배우는 그 구조가 인상 깊었다. ‘채드 파워스’도 비슷하다. 좋은 팀원이 아니었던 사람이 ‘좋은 팀원의 가면’을 쓰고 결국 진짜 좋은 팀원이 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작품 속 메시지는 파월 자신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이 업계에서 두 번째 기회를 얻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많은 경우, 누군가 나를 믿게 만드는 게 가장 어렵다. 그래서 나는 항상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고 털어놨다.
‘채드 파워스’는 미국 풋볼의 전설적인 쿼터백 형제, 페이튼 매닝과 일라이 매닝이 제작자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미식축구의 디테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매닝 형제는 직접 훈련까지 지도했다. 파월은 “실제 NFL 선수들이 훈련하듯, 디펜스와 오펜스를 구성해 훈련했고, 페이튼과 일라이는 매일 밤 촬영 영상을 보며 피드백을 줬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패트릭 마홈스의 코치였던 인물을 자신의 쿼터백 코치로 두고 훈련에 임했다. 매닝 형제는 훈련장에 공격과 수비 라인, 코너백, 리시버까지 모두 배치해 실전과 같은 환경을 조성해줬다. 파월은 “극 중 경기가 가짜처럼 보이지 않도록 모든 팀, 유니폼, 경기장을 실제 팀과 제휴했다”며 “현실에 기반한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고,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풋볼 장면을 구현하고자 했다”고 자신했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을 ‘팀 스포츠’에 비유한 파월은 “축구팀처럼, 모든 사람은 각자의 역할이 있다. 그 각자가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를 보는 것이 내게는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작품의 성공 요인으로 ‘현장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꼽았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한다. 나는 항상 촬영장이 서로를 응원하는 공간이 되도록 신경 쓴다”며 “모든 부서가 자신이 맡은 일에 자부심을 갖고, 서로 잘해보자고 손을 맞잡을 때 그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든다”고 덧붙였다. 스스로를 ‘보스’가 아닌 ‘치어리더’라 표현한 그는 “모두가 일터에 오는 것을 즐겁게 느끼고, 좋은 결과를 함께 만들어가려는 분위기만큼 소중한 건 없다”고 강조했다.
/하은선 골든글로브 재단(GGF)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