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마(軍馬) ‘레클리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4-10-10

6·25전쟁 초반 낙동강 방어선 전투 당시 맹활약을 펼친 미군 부대로 육군 제1기병사단을 빼놓을 수 없다. 기병(騎兵: cavalry)의 사전적 정의는 ‘말을 타고 싸우는 병사’다. 그렇다면 1기병사단은 아직도 말 등 안장 위에 올라타 소총을 쏘는 군인들로 구성된 부대라는 말인가. 1기병사단이 창설된 1921년에는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벌써 100년 넘게 지난 옛날 이야기다. 1914년 시작해 1918년 끝난 제1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세계 주요국 육군에는 기병 부대가 존재했다. 보병(步兵)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군하는 기동성이야말로 기병의 최대 강점이었다. 하지만 기관총, 탱크(전차), 헬리콥터 같은 신무기가 속속 등장하며 기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미 1기병사단 부대기에 말 머리가 그려져 있는 것은 여전하나, 주력 무기는 말에서 공격 헬기 등으로 진작 바뀌었다.

1939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앞선 1차대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기병을 대신해 탱크와 항공기가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는 ‘게임 체인저’로 자리매김 했다. 그렇다고 말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군인들이 먹을 식량 등 각종 군수 물자를 최전선까지 옮기는 작업의 상당량이 말들한테 맡겨졌다. 철로가 놓이고 도로가 뚫렸다고는 하나 그 엄청난 수송 물량을 기차와 승용차만으로는 도저히 운반할 수 없었다. 2차대전 초반 프랑스를 정복하고 소련(현 러시아)을 거의 항복 직전까지 밀어붙인 나치 독일군 역시 보급품 이동의 일정한 부분은 말들한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기간 말의 용도는 그뿐이 아니었다. 2차대전 도중 나치 독일과 공산주의 소련 간의 가장 치열했던 싸움으로 꼽히는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 전투 당시의 일이다. 독일군은 승리를 자신했으나 격렬한 시가전 끝에 병력 규모 면에서 월등히 우세했던 소련군에 포위를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히틀러는 “철수나 항복은 불가하다”며 “공군 수송기로 보급품을 공급할 테니 무조건 버텨야 한다”고 다그쳤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식량이 다 떨어진 독일군은 불과 얼마 전까지 군수 물자를 나르는 데 이용한 말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어느 독일 군인은 일기장에 “말고기가 이렇게 먹을 만한 줄은 미처 몰랐다”는 기록까지 남겼다. 결국 독일군은 1943년 2월 초 소련군에 항복하고 만다. 독일이 소련에 완패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오늘날 2차대전 판세를 가른 결정적 장면으로 기억된다.

2차대전 종전 후 5년 만인 1950년 한국에서 6·25전쟁이 터졌다. 개전 직전까지 서울 경마장에서 달렸던 말 ‘아침해’는 한국에 주둔한 미 해병대의 군마(軍馬)가 되었다. 미군 6·25전쟁 참전용사들에 따르면 이 말은 기억력이 좋아 한 번 갔던 길은 모두 기억했다. 높은 산 위로 탄약을 실어나르고 하산할 때에는 부상병을 운반했다. 미군 장병들은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뜻으로 ‘레클리스’(Reckless)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전후 미국으로 건너간 레클리스는 군마로는 이례적으로 하사 계급장까지 달고 예우를 누리다가 1968년 죽었다. 한국마사회 제주본부가  오는 26일 렛츠런파크 제주에서 개막하는 제주마축제 때 레클리스를 기리는 기념관 개관과 동상 제막식을 연다고 발표했다. 레클리스가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전쟁 영웅’ 대접을 받아 온 점을 감안하면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으나, 늦게라도 그 공로를 인정하고 널리 알겠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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