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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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멀쩡하게 운영하고 있던 인스타그램 육아 계정이 하룻밤 만에 사라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이 14세 미만 미성년자가 운영하는 계정을 비활성화한 것인데, 실제로는 부모가 운영하는 자녀 계정도 비활성화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됐다. 인스타그램의 이번 조치는 최근 세계 각국에서 미성년자의 소셜미디어(SNS) 사용을 법적으로 제한하려 하는 추세와 관련 있다.
SNS 규제에 가장 적극적인 건 호주다. 호주 통신부는 21일(현지시간) 의회에 16세 미만 미성년자의 SNS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SNS가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우리 아이들에 해를 끼치는 SNS에 종신형을 선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 적용 대상 SNS에는 X(옛 트위터)와 틱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이를 위반한 회사에 최대 5000만 호주 달러(약 456억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청소년 폭력 사건은 SNS 영향 탓?
호주에선 최근 미성년자의 폭력 사건이 발생하며 관련 논의가 촉발됐다. 지난 4월 시드니의 한 교회에서 16세 소년이 미사 중인 주교를 흉기로 공격한 사건이다. 경찰은 범인이 SNS로 극단주의자들과 교류하다가 테러리스트가 됐다고 봤다.
법안 추진에 동참하고 있는 시민단체의 활동가도 끔찍한 일을 겪었다. AP통신에 따르면 소냐 라이언은 지난 2007년 15살인 딸이 온라인에서 10대인 척한 50세 소아성애자에 의해 살해된 후 사이버 안전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다. 라이언은 "아이들이 (SNS에서) 유해한 포르노와 허위 정보 등에 노출되고 있다"며 "아이들을 노리는 위험은 많은데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미성년자의 SNS 사용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은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영국도 호주와 비슷한 규제를 검토 중이다. 피터 카일 영국 기술부 장관은 20일 BBC에 16세 미만을 대상으로 SNS를 금지하는 방안을 언급하며 "어린이를 온라인에서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프랑스는 지난해 6월 부모나 보호자의 승인이 없으면 15세 미만의 SNS를 차단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노르웨이는 연령 제한을 기존 13세에서 15세로 올린다는 방침이다.
반발하는 빅테크들 "부모 안심 기능 확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와 구글, 틱특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이 같은 사용 제한 조치에 반발했다. 이들은 SNS 사용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메신저나 게임 서비스는 제한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SNS 분류 기준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호주의 경우 유튜브처럼 계정 없이도 접속할 수 있는 플랫폼은 제한을 받지 않는다. 호주의 디지털산업그룹(DIGI)은 "금지 조치가 청소년들은 규제되지 않는 더 위험한 영역으로 몰아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SNS 운영 기업들은 이미 청소년을 유해 콘텐트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례로 인스타그램은 미국·캐나다·호주·영국 4개국에서 청소년 전용 '10대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민감한 콘텐트 노출을 제한하고 오후 10시부터 오전 7시 사이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할 수 있는 기능이 특징이다. 인스타그램은 10대 계정을 내년 1월부터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국가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연이은 폭력 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영국도 SNS에 책임을 돌렸다. 영국 의회는 X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 경영자(CEO)를 의원들 앞에 부를 예정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0일 전했다. 집권 노동당 소속의 치 오누라 하원 과학혁신기술위원회 위원장은 머스크를 비롯한 빅테크 임원들에게 SNS가 올해 여름 영국 폭력사태에 미친 영향에 대한 설명을 청취하겠다고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