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에서는 국민의 75%가 대통령에게 화를 내고 있지요. (중략) 그들의 바람에 존경을 표합니다. 한국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길 바랍니다."
지난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묵(72)이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과 관련해 메시지를 내놨다. 신간 『먼 산의 기억』(민음사) 출간을 계기로 한국 언론들과 공동으로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터키어로 번역된 그녀의 작품들을 구입해 놓았고, 곧 읽을 것"이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먼 산의 기억』은 파묵이 노벨상 수상 후부터 14년간, 늘 들고 다니던 몰스킨 다이어리에 그림과 함께 떠오르는 단상을 적은 일종의 '그림일기' 를 모은 책이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꿨던 그는 스물 두 살에 꿈을 접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강했던지 떨쳐버리지 못하고" 틈틈이 수첩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파묵은 "7살 때 어머니가 일기장을 선물해 준 후부터 일기를 써 왔고, 몰스킨에 쓰기 시작한 것은 노벨상 수상 이후"라면서 "일기는 다른 사람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자기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일기장에 담긴 그의 그림은 소박하면서도 강렬하다. 화려한 색과 힘찬 터치로 산과 바다, 유럽의 도시 풍경, 자신의 작업실 등을 묘사했다. 풍경을 주로 그리는 이유에 대해 그는 "'모든 것이 풍경'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싶다"면서 "풍경을 보면 아, 여기는 내 고향이야, 같은 마을이네 등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된다. 풍경화는 회화 예술에서 가장 순수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파묵은 1979년 첫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펴낸 후 대표작인 『내 이름은 빨강』(1998), 『눈』(2002),『순수 박물관』(2008) 등에서 동서양 문명이 교차하는 튀르키예 역사를 배경으로 실제와 환상, 정치와 사랑이 뒤엉킨 세계를 선보여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06년 당시 54세의 젊은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에도 "쉼 없이 하루 8~10시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노벨문학상은 한 작가의 정점(peak)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당신에겐 어떠한가"하는 말에 질문에 그는 "내겐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했다.
"노벨상을 받던 해 『순수 박물관』을 쓰고 있었는데, 수상 후에도 간극을 두지 않고 계속 썼습니다. T. S. 엘리엇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좋은 작품을 쓰지 못했다는 말을 한 것 같 같은데,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쓴 소설 중 가장 좋은 작품 세 편을 꼽는다면 『검은 책』, 『내 이름은 빨강』, 그리고 『내 마음의 낯섦』입니다. 노벨상이 제게 무언가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약간의 책임감 말고는…. 물론 상을 받은 후 새로운 독자들이 생겼지요."
파묵은 튀르키예의 권위적인 정치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2005년에는 과거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족 집단 학살 사건을 비판했다가 국가모독죄 혐의로 튀르키예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은 내가 용감하다고 말하는데, 과장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면서 "물론 두려울 때가 있다. 튀르키예 대통령은 많은 작가를 감옥에 넣었지만, 아마도 노벨 문학상이 나를 보호해 주는 것도 같다"고 담담히 밝혔다.
현재 『첫사랑』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집필 중이라는 그는 "언제 출간될지 예측할 수 없지만, 한국 독자들과도 만날 이 소설을 끝맺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조언을 건넸다.
"자기 자신을 믿기 바랍니다.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을 믿으세요. 공책과 홀로 남으세요.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말고 부끄럽더라도 계속 쓰십시오. (중략)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 앞에 수동적이고 무의미하게 대처하는 대신 능동적이고 활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