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선 콜센터 근무자, 방송 외주 제작사 PD 등이 모여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인정해 달라”고 외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근로자로 일하지만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이른바 ‘무늬만 프리랜서’들이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근로기준법을 빼앗긴 무늬만 프리랜서가 곧 1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실종됐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부천지청은 콜센터 업체 ‘콜포유’의 교육생에 대해서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을 24년 만에 뒤집은 결정이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하은성 노무사에 따르면 최근 콜센터 교육생의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판정이 잇따라 추가되고 있다고 한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은 유튜버에 고용돼 영상 편집 및 기획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대다수 노동청은 여전히 관행에 따라 소극적으로 노동자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나은행 콜센터의 하청업체에서 상담사로 일하는 이모씨도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씨가 일하는 업체의 경우 계약서에 교육 참여의 강제성을 명시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김현주 민주노총 든든한콜센터지부 지부장은 “해당 업체에선 업무 능력 테스트도 보는 등 실질적인 강제성이 있었다”며 “어느 콜센터든 교육을 하루라도 받지 않으면 업무 진행이 어려운데, 근로감독관이 이를 인정해주지 않은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송계에서의 프리랜서 문제도 해결이 요원한 상황이다. 11년간 KBS ‘생생정보통’ 제작 PD로 일하다가 지난해 퇴사한 40대 최모씨는 서울남부지청에 근로자성 인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건처리결과 통지서를 보면 최씨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가 주원인이었다. 그러나 최씨는“제작한 영상 모두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만들었다”고 반박했다. 진재연 ‘엔딩크레딧’ 집행위원장은 “고용노동부의 소극적 판단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고(故) 오요안나씨가 쓴 프리랜서 계약서처럼 해당 계약서는 족쇄처럼 근로자의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사례 한 건에 대해 근로자성이 인정됐다고 해서 그 직종의 근로자성을 전부 인정하는 건 아니다”며 “진정 사건은 판례에 따라 개별적·구체적으로 따져본 뒤 근로감독관이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이씨와 최씨 등 50여명이 낸 공동 진정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들처럼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하는 근로자에 대해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과 객원교수는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프리랜서를 보호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며 “노사 간 협의를 통해 하청이 아닌 직접 고용 식으로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경제연구소 교수는 “근로자성을 인정받아야 하는데도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노동자들이 많다”며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의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