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축구연맹(FIFA)이 여자 축구선수들의 전방십자인대(ACL) 부상 원인 규명을 위해 본격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한다. 연구는 런던 킹스턴대학교 주도로 이뤄지며, 오는 5월부터 1년간 진행될 예정이라고 BBC가 30일 전했다.
특히 이번 연구는 생리 주기 동안 발생하는 호르몬 변화가 ACL 부상 위험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미 다양한 연구를 통해 여성 선수는 남성 선수보다 ACL 부상을 당할 확률이 2~6배 높다는 사실이 보고된 바 있다.
킹스턴대학 스포츠 생체역학 담당 시몬 어거스터스 교수는 “생리 주기에 따라 해부학적, 생리학적 기능 변화가 부상 위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호르몬이 주기에 따라 변동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부상 위험과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결되는지는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런던 지역 클럽 소속 선수들과 일부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상으로 혈액 및 신체 퍼포먼스를 정기적으로 측정할 계획이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농도 변화를 주기별로 추적하면서, 급격한 방향 전환이나 점프 착지와 같은 ACL 부상 위험 동작과의 연관성을 분석한다. 특히 비접촉 상황(non-contact)에서 발생하는 ACL 부상은 훈련이나 기술 보완을 통해 예방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연구의 실질적 의미가 크다. 어거스터스 교수는 “충돌이 아닌 상황에서 발생하는 ACL 부상을 줄이기 위해, 힘 강화 훈련이나 기술적 수정을 통해 예방할 방법을 찾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FIFA 연구는 최근 발표된 여러 선행 연구들을 토대로 기획됐다. 2024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바스대, 세인트 메리대 연구에 따르면, 여성 선수들은 생리 전 며칠 동안 근육 부상 위험이 평소보다 6배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연구는 선수 26명을 추적한 결과로, 생리 직전기에 근력 약화와 반응 속도 감소가 부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가설을 뒷받침했다. 이와 별도로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PFA),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 나이키, 리즈 베켓대학교는 3년간의 ACL 예방 연구를 추진 중이다. 이 연구는 시설 환경, 장비, 훈련 일정, 이동 스케줄 같은 외부 요인이 부상 위험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부적절한 축구화, 비적합한 경기장 상태 역시 ACL 부상 위험 요인으로 지목됐다. 브라이튼 구단 CEO 폴 바버는 최근 BBC와 인터뷰에서 “여성 팀 전용 구장에 맞는 최적의 잔디 상태를 위한 자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여성 축구에서도 선수 생리학적 특성과 인프라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접근이 시급해진 셈이다.
ACL 부상은 선수의 커리어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 레아 윌리엄슨, 비비안 미에데마, 베스 미드, 그리고 샘 커까지, 지난 2년간 잇따른 주요 선수들의 ACL 부상은 여자 축구계에 심각한 경고를 울렸다. BBC는 “이제 FIFA를 포함한 축구계 전체가 이 문제에 과학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며 “여성 선수들의 몸에 맞는 축구 환경 구축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