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만든 영화는 전설이 됐다…고다르의 시작, ‘누벨바그’

2025-12-31

1959년 프랑스 파리. 적은 예산으로 촬영을 20여 일 만에 마쳐야 하는 영화 현장이 어쩐지 조용하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영화감독은 바삐 카메라를 돌리기는커녕, 카페에 앉아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다. 자신만을 쳐다보는 스태프들은 안중에도 없던 그가 말한다. “영감이 안 떠올라요. 오늘은 촬영 끝.” 아직 데뷔도 못한 감독의 객기에 미국 배우 진 세버그(조이 도이치)는 황당해하고, 돈을 댄 프로듀서 조르주 드 보르가르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하지만 2025년의 관객은 이 감독의 만용을 유쾌하게 넘길 수 있다. 엉망진창 같은 이 현장에서 세기의 데뷔작이 탄생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꼬장꼬장하고 제멋대로인 저 감독이 시네필의 영원한 우상, 장 뤽 고다르라는 것도. 31일 개봉한 영화 <누벨바그>는 현대 영화사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남은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하라>(1960)가 만들어지던 때를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고다르식’으로 포착한 영화다.

흔히들 영화사는 고다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한다. 프랑스 영화 평론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진이었던 그는 29세에 만든 첫 장편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서 기존 영화의 틀을 파격적으로 깨뜨렸다. 카메라를 삼각대 없이 핸드헬드로 들고 촬영했고, 급격히 장면을 전환해 연속성을 깨뜨리는 ‘점프컷’을 애용했다. 즉흥성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던 그는 배우들에게 미리 대본을 전달하기보다 그때그때 대사를 알려주며 연기하게 했다. 고다르는 프랑수아 트뤼포 등 영화 평론가 겸 감독 친구들과 함께 프랑스 ‘누벨바그(새로운 물결)’의 상징이 됐다.

한 시대의 상징이 되어버린 인물을 스크린에 박제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프랑스 누벨바그가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말하는 링클레이터 감독에게 고다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드는 건, 오래 소망했던 일이었다. 그는 “어떤 룰도 따르지 않으며 두려움 없이 규칙을 전복시키는 고다르의 에너지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고 한다.

<비포 선라이즈>(1995) 등 한 커플의 18년을 그린 ‘비포 시리즈’ 3부작, 한 소년의 성장기를 12년에 걸쳐 제작한 <보이후드>까지. 긴 시간을 영화에 아름답게 옮겨놓는 마법을 부렸던 링클레이터 감독이 이번에는 관객을 누벨바그의 시대로 단숨에 ‘점프’시킨다. 4:3 비율의 흑백 셀룰로이드 화면에 비친 파리는 낭만적이고, 신예 배우 기욤 마르벡이 연기한 고다르는 고다르답게 매력적이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당대 유명인사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트뤼포, 아녜스 바르다, 로베르 브레송 등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배우들은 실존 인물들과 일치율이 높다. 캐스팅 오디션에만 6개월이 걸린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영화에 들어가기 전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우리는 시대극을 찍는 것도 리메이크를 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누벨바그가 탄생하는 순간, 지금을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 영화가 20세기의 명작으로 남은 건 사후적인 일이니 신경 쓰지 말고, 그저 창작 활동이 가져다주는 “흥분과 낙관주의”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자는 요청이었다. 그래서일까. <누벨바그> 속 세버그와 장 폴 벨몽도(오브리 뒬랭)는 물론, 스크립터와 촬영 감독 등 제작진들이 의기투합하는 촬영 현장은 희한한 활기를 내뿜는다.

60여 년 전 ‘새로운 영화’를 바라던 젊은 영화인들의 모습은 신선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우리 탐구를 계속해요. 즉흥성과 돌발성의 탐구. 우리만 할 수 있으니까.” 냉소적인 태도로 열정적인 고다르의 말에는 전염성이 있다. ‘영화의 위기’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어버린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영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고 싶게 한다. 상영중. 106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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