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구에 다녀왔다. 기차 좌석에 앉아 책을 읽었다. 최근 출간된 김영복 선생의 <옛것에 혹하다>라는 책이다. 선생은 고서적과 서화에 대한 감식안이 빼어난 분이다. 오랫동안 인사동 현장에서 실물을 접하면서 감정과 상인의 일을 병행해온 경험의 시간 또한 유장하다. 별명이 인사동의 터줏대감이다.
그러나 이제 인사동은 좋은 고미술품 가게나 전시장이 많이 사라지고 뛰어난 안목의 상인들도, 대단한 소장가들도 소멸해 가는지라 더없이 삭막하고 쓸쓸해졌다. 골목에 숨은 듯이 자리한 몇개의 고미술 가게들은 적요한 풍경을 배경으로 주저앉아 있다. 그 허망해진 거리에 음식점, 화장품과 옷 가게, 조악한 중국제 물건이 판을 친다. 인사동은 더 이상 한국 현대미술과 고미술의 본향이 되지 못하고 쇠퇴했다. 오래전 이 거리에서 천상병 시인과 중광 스님, 유양옥 선생과 사진작가 김영수, 화가 이대원·권옥연·송수남 등 많은 이들을 자주 접하곤 했는데 이제 그들은 모두 고인이 됐다. 그런 세월이 무상하기도 하고 참담하기도 하다.
그런 생각에 잠기다 이내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광장을 지나 차를 타러 가는 길에 최근 세워진 박정희 동상을 보았다. 밀짚모자에 장화를 신고 커다란 벼 이삭을 무겁게 들고 서 있는 모습이다.
첫인상이 괴기한 동상이다. 어색하고 낯선 동상 하나에 왜 나는 분노하고 절망하는가. 우리나라 공공조형물과 동상의 수준이 어째 이렇게도 허접한 것들뿐인지 화가 치민다.
이 땅의 조각가들, 조형물 제작자들이 만들어 세워놓은 그 모든 조형물은 차마 바라보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차라리 조형물 없는 공간이 그립다. 쾌적한, 빈 여백과도 같은 공공의 공간을 가만두지 못하고 왜 괴롭히고 있는지 따지고 싶다. 아니면 주어진 공간에 절묘하게 개입하고 사람들과의 시선과 동선에 긴밀히 관여하는 것들, 조형적으로 힘이 있고 뛰어난 것들은 왜 불가능한가 되묻고 싶다. 좋은 작가들은 아수라판인 조형물 시장을 외면할 것이고, 조형물을 집행하는 쪽은 결코 좋은 작가와 작품을 선정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보는 눈도 당연히 없으니 그저 인맥이나 뒷돈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그나마 찾아간 대구의 전시장에서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삼국시대 토기를 촬영한 고혹적인 사진 작품과 형상이 부재한, 전적으로 색과 붓질에 의해 충족되는 매력적인 추상회화를 둘러보면서 조금은 진정됐다.
마침 전시장이 대구 골동품 가게들이 모여 있는 이천동 고미술품 거리 부근이어서 몇몇 가게를 둘러보았다. 이곳에 와서 고완품들을 완상하고 더러 몇개씩 사곤 했다. 저렴한 작은 연장들과 목기, 손잡이 토기잔 등이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이곳은 거의 황무지가 됐다. 그 많던 가게들이 거의 사라졌고 그나마 있는 몇군데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가게에 나와 봐야 손님이 오지 않으니 아예 문을 닫아놓거나 물건을 구하러 지방의 경매장을 다닌다는 것이다. 고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있고, 고완품을 완상하는 문화가 몰락하고, 시장 자체가 깊은 침체에 빠진 것이다. 이천동 고미술품 거리는 인사동보다 더 급속하게 쇠락해 버렸다.
문을 닫은 가게의 진열장 너머로 보이는, 이제는 허접한 물건밖에는 남아 있지 않은 침침한 그 내부를 안타깝게 들여다보았다.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려는 저 고미술품들의 잔해들을 처량한 마음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품격 있는 문화를 유지했던 장소와 시기가 몰락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