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헌동 前 SH 사장 "가장 잘한 일은 분양원가 공개...정부는 외면"

2025-02-24

취임 후 분양원가 전격 공개…서울 2~3억 아파트

후분양제 등 임기 내 개혁정책, 집값 안정 기여 평가

"다시 부동산 개혁 위해 뛸 것"

[미디어펜=조성준 기자]김헌동 전(前)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은 '부동산 정책 저격수'로 불린다.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으로 주택 ‘분양원가 공개’와 ‘후분양제’ 등에 있다는 철학을 굽히지 않고 있어서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가장 뼈아픈 부분이다 보니 날 선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다.

실제 김 전 사장은 지난 2021년 11월 SH사장 취임 후 임기 3년을 보내면서 자신의 철학을 현실에 펼쳐냈다. 그 과정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이권 카르텔과 LH 분양가 공개 요구 등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는 건설사와 시민운동가 경험을 두루 갖췄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1981년부터 20여년 간 쌍용건설에서 일했고, 1999년부터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 본부장,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 등으로 활동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를 임명했던 인물이 오세훈 서울시장이라는 점이다. 오 시장의 서민들의 주거부담을 해소해야 한다는 평소 철학이 김 사장과 통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분양원가를 공개하지 못한 노무현·문재인 정부에 날 선 비판을 하는 등 좌우를 따지지 않는 부동산 개혁가라는 수식이 그를 가장 잘 설명한다. 다시 시민사회로 나온 그의 개혁 의지는 그대로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폭등한 아파트값이 시장가로 굳어지면서 한숨짓는 서민들이 많은데.

직장이나 모임에서 사람들이 모이면 절반 이상이 집값 이야기를 한다. 동창회나 경조사 자리에서도 부동산 이야기는 어김없이 나온다. 유주택자는 서로 '얼마 올랐다'는 이야기를 하고 무주택자는 그 이야기가 듣기 싫고 사기가 떨어진다. 결국 '집 잘 골라서 공돈을 얼마나 벌었느냐'로 귀결된다. 무주택자는 물론이고 유주택자도 나보다 더 번 사람을 보면 속이 쓰린다. 열심히 노력하고 일했는데 부동산 자산에 따라 자신이 바보가 된 느낌을 받는 것이다. '벼락거지'라는 자조가 그 말 아닌가. 그때부터 '영끌' '패닉바잉'이 나타나면서 수요공급 공식도 먹히지 않게 됐다.

-아파트값이 고가로 유지되는 것이 수요공급법칙 때문이 아닌가.

우리나라 아파트 시장에서는 아니라고 본다. 수요공급법칙이 맞다면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아야 한다. 우리나라 인구가 2012년 6월 23일 5000만 명을 돌파한 이후 2023년 기준 5171만 명 수준이며, 인구가 서서히 줄고 있다. 그 동안 전국 주택 수는 훨씬 늘었을 텐데 집값은 계속 올랐다.

-최근 서울 부동산 가격이 비싸게 유지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서울 집값을 자극하는 요인이 뭔지를 파고 들어갔더니 LH 등 공공이 골목골목 다니면서 주택을 매입해 주는 게 문제였다. 공공이 주택을 비싼 값에 매입해 주니 실거래가가 비싸게 형성되고 다음에 공공이 감정평가사한테 의뢰하면 거래 감정 가격이 높아지는 현상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발생해온 것이다.

-국토부가 최근 발표한 지방 미분양 매입임대 계획에도 부정적인 입장인가.

그렇다. 지난 19일 국토부가 발표한 지방 미분양 주택 3000가구 매입임대 계획은 정부가 LH를 통해 과거부터 서울 및 수도권에 계속 했던 방식이다. 서울에는 몇 만개씩 해줬는데 왜 지방에는 안해주냐는 항의가 발생하니까 우선 3000개 정도 해주라는 식이다. 지방에 아무도 사지 않는 아파트를 지어놓았는데, 이를 정부가 매입해서 공공주택으로 바꾼다는 이야기다. 서민이 아닌 건설사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본다.

-공공의 미분양 주택 매입을 반대한다면, 집값을 안정시킬 좋은 방안이 있나.

고가 분양으로 수요가 없어 미분양된 아파트를 국가가 사들이지 말고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한다. 이는 SH에서 단행한 개혁 중 핵심으로, 2004~2024년 20년 치 SH 공급 아파트의 분양 원가를 총 8번의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한 바 있다. 이로써 강남, 위례 일부, 강동, 마곡 등 서울의 다양한 지구별 단지의 분양 원가가 공개됐다.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 더 자세하게 말해달라.

서울 공공 주택 수장으로 집값 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개혁을 단행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20년 서울 아파트 분양원가를 상세하게 공개한 것이다. 면밀한 분석을 통해 25평 아파트 건축 원가는 2억 원 수준임을 세상에 알렸다. 이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고위 관료들이 20여년 동안 감춰온 공공주택 분양원가 내용을 최초로 공개한 것이다.

-반대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LH와 국토부는 시민사회에서 분양원가를 공개해 달라는 요청을 20년 째 외면하고 있다. SH나 LH는 토지를 확보해서 아파트를 저렴하게 공급하라고 만든 개발 공기업인데 설립 목적을 생각한다면 분양원가 공개를 반대해서는 안 된다.

-실행했던 또 다른 개혁안을 소개해달라.

재임 시절 단행한 후분양제가 있다. 현재 SH는 90% 완공 후분양제를 시행 중이다. 또 반의 반값 수준인 '백년주택'을 3억 원에 서울에 공급했다. 반값아파트로도 불리는 백년 주택은 '백년 이상 사용이 가능한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이름을 지었다. 이밖에 직접시공, 적정임금, 종부세 면제 등 10여 가지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앞서 말한 대로 매입임대는 건설사만을 위한 것일 뿐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추진 중이던 매입(약정 매입)임대용 주택을 줄였다. 반지하 주택 구축 아파트 등 실제 서민을 위한 주택만 매입해 서울 골목골목 집값을 자극하던 빌라 연립 등 매입을 축소 또는 대폭 줄였다. 연간 6000호 약 2조5000억 원의 예산 중 절반 이상을 아껴서 예산 낭비를 없애고 효율적 활용방안을 제시했다.

-3년 동안 바쁘게 활동했다. 아쉬운 점은.

SH가 추진한 10여 가지 개혁 정책을 서울시 관료와 국토부 관료 그리고 정치인 언론 등의 장애를 넘지 못한 점이다. 1억 원만 가지고 대출을 통해 서울에 30평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백년주택' 정책과 2억 원이면 아파트를 건설해서 공공 임대 방식으로 공급 가능한데, 매입(빌라) 약정 방식으로 4~5억 원에 빌라를 매입 예산을 낭비하는 행위를 막지 못해 아쉽다. 또한 분양원가 공개, 후분양제 등 혁신 정책이 국토부나 LH의 호응으로 이어지지 않고 반대에 막혀 제 효과를 보기도 전에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SH에서 부동산 개혁안을 실행할 수 있었고, 지난 20년간 시민사회에서 그러했듯이 이제 바깥에서 다시 뛸 것이다. 사실 부동산 개혁이란 것이 남을 위해서 봉사를 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인데, 반발하는 세력이 많다 보니 좋은 평가를 받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건설사 경험과 시민운동가로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지난 3년간 내부에서 실질적으로 부동산 문제를 개선하는 일을 한 것은 큰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거품 덩어리인 집을 사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최소화하고자 이 문제를 상세하게 알린다는 일념으로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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