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피드’를 갈망한다… 레이싱 시계 과거와 현재 [김범수의 소비만상]

2024-10-12

시계는 바쁘게 움직이지 않을 땐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다. 하지만 문명이 빠르게 움직일 수록 또는 발전할 수록 시계의 필요성은 커졌다.

특히 20세기 들어서 자동차의 발전은 시계의 발전과 함께 했다. 오늘날에도 자동차는 ‘빠른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시계는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동차가 처음 등장할 때만 하더라도 속도를 나타내는 계기판이나 GPS가 없던 시절이라 운전자는 자신의 위치와 차량의 속도를 시계를 통해 계산해내야 했다.

◆자동차의 탄생…‘레이싱 시계’의 시작

1890년 자동차의 시대가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자동차 경주에 대한 관심도 커지기 시작했다. 당시만해도 자동차는 귀족이나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는데, 이들 사이에서 자동차 경주는 과거 중세 기사의 마상 경기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당시 자동차 경주는 오늘날 ‘포뮬러 1’(Formula 1, F1)과 같이 트랙을 도는 게 아니라 출발 도시에서 특정 도시까지 얼마나 빨리 도착할까 레이싱이었다. 오늘날에는 위험성 때문에 금기시 되는 공도 레이싱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장거리 레이싱으로 이탈리아에서 열린 ‘밀레 밀리아’(Mille Miglia)가 있다. 밀레 밀리아는 이탈리어로 숫자 1000을 뜻하는 ‘밀레’와 거리를 나타내는 ‘마일’의 합성어로, 로마에서 출발해 북부 도시인 브레시아를 찍고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1000마일(약 1609㎞) 코스의 장거리 레이싱이다.

밀레 밀리아는 1927년에 시작됐는데 당시 자동차 경기는 오늘날 보다 위험을 동반했다. 제대로 포장된 도로가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장거리를 달리다보면 차체에 과부하가 걸리기 십상이었고, 중간에 차량이 고장나는 경우도 비일비재 했다.

역시 운전자 손목에 찬 시계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기 마련이었다. 수 많은 진동과 먼지 등으로 운전자의 시계도 고장나기 쉬웠고, 이를 보완해 시계 제조사들은 ‘튼튼하고’, ‘정확하고’, ‘찰나를 기록할 수 있는’ 시계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레이싱 시계’의 탄생이다.

장거리 레이스 운전자들은 이 같은 레이싱 시계를 타고 경기에 나섰고, 우승을 하면 카레이서가 사용한 시계 역시 험난한 여정을 견딘 ‘좋은 시계’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다.

쇼파드(Chopard)의 ‘밀레 밀리아’ 모델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레이싱 시계의 대표적이다. 또한 쇼파드의 밀레 밀리아는 오늘날 밀레 밀레아의 공식 스폰서이기도 하다.

◆레이싱 시계의 상징 ‘타키미터’ 기능이란

‘타키미터’(Tachymeter)는 손목시계로 시속을 측정하는 기능으로 스탑워치 기능인 ‘크로노그래프’(Chronograph)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타키미터 기능이 있는 손목시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모델을 꼽자면 ‘문워치’로 알려진 오메가(Omega)의 스피드마스터(Speedmaster), 롤렉스(Rolex)의 데이토나(Daytona),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태그호이어(Tag Heuer)의 포뮬러1(Formula 1)이 있다.

처음 타키미터를 접했을 때 사용 방법을 몰라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원리를 알고 나면 어렵지 않은 기능이다. 타키미터는 차량이 1㎞를 이동하는 동안 크로노그래프(스탑워치)를 통해 몇 초가 지났는지 측정하는 원리다.

세부적으로 보면 차량이 출발할 때 스탑워치의 시작 버튼을 누른다. 차량이 1㎞의 목적지에 도착할 때 스탑워치의 정지 버튼을 눌러 크로노그래프의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가 테스트한 차량의 시속이다.

만약 차량이 20초만에 1㎞를 돌파하면 크로노그래프 바늘은 180눈금을 가리키게 된다. 1시간이 3600초라는 사실을 기준해 20초를 나누면 180㎞/h가 되는 간단한 원리다.

물론 기계식 타키미터는 스탑워치는 물론이고 실시간으로 속도를 측정하는 기능이 있는 디지털 시계와 비교하면 신기하지만 쓸모없는 기능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계식 시계에 가성비를 따지는 건 애초에 의미없는 일이다. 그저 ‘예쁘면 좋고’, ‘좋으면 그만’이라는 공식이 통용되는게 기계식 시계 시장이다.

◆시계 제조사의 ‘스피드 마케팅’과 카레이싱 후원

오늘날에도 시계 제조사들은 자동차와 카레이싱을 통한 마케팅에 진심이다. 자동차 경기라는 ‘멋지고 쿨한’ 이미지를 활용할 수록 소비자들의 구매욕구를 불러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시계 제조사들이 ‘스피드 마케팅’을 통해 자사 제품의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한다.

대다수의 시계 제조사들이 포뮬러 1의 공식 시계 스폰서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동차 경주가 시간 싸움이라는 특성상 시계 이미지 노출이 어마어마하게 크면서,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기 때문이다. 오늘날 포뮬러 1의 공식 시계 스폰서는 롤렉스로 2012년부터 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시계 제조사는 카레이싱 팀을 후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팀이나 카레이서의 이미지를 담은 한정판을 출시하는 등 시계와 카레이싱 두 산업 간 긴밀한 관계는 더욱 커지고 있다.

태그호이어는 ‘스피드마케팅’에 더 적극적 브랜드로 알려졌다. 자사 제품 라인 이름부터가 ‘포뮬러 1’, ‘까레라(Carrera)’, ‘모나코(Monaco)’ 등 자동차 경주와 관련된 용어다. 태그호이어는 오늘날에도 유명 F1 팀인 ‘레드불 레이싱’을 후원한다.

가장 비싼 스포츠시계 마케팅을 하는 리차드밀(Richard Mille) 역시 F1 팀을 후원한다. 리차드밀은 무려 ‘맥라렌 F1’과 ‘스쿠데리아 페라리’ 두 개의 팀을 후원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카레이서 카를로스 세인즈(Carlos Sainz)의 리차드밀 ‘RM UP-01 페라리’ 모델을 보면 기존에 알려진 리차드밀의 디자인을 탈피해 좀 더 클래식하면서 자동차 부품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을 담았다. 페라리의 로고도 눈에 띈다.

이밖에 독일의 시계 브랜드 IWC는 자국의 자동차 기업인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 팀을 후원하고, 지라드 페리고(Girard Perregaux)는 ‘007 시리즈’의 자동차로 알려진 에스턴마틴 팀을, 모저앤씨(H. Moser&Cie)는 BWT 알파인팀을 후원하고 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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