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에 ‘머로 순간’이 오고 있다

2024-09-22

‘머로 순간’이란 말이 있다. 언론이 거침없이 행동하는 유력 정치인 말을 조신하게 받아쓰다가 돌연 태도를 바꿔 그에게 비판적으로 돌아서는 시점을 말한다. 1950년대 초 냉전시대 미국에서 빨갱이 사냥으로 승승장구하던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은 1954년 마침내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 몰락을 앞당기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 바로 CBS의 머로 기자다. 그는 <지금 봐라(See It Now)>란 방송에서 매카시의 발언이 얼마나 모순인지 고발하면서, “안에서 자유를 저버리면서, 해외에서 지킬 수는 없다”고 논평했다.

이로부터 62년 후 ‘머로 순간’을 다시 소환한 이는 언론학자 민디치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 캠페인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몰이를 하던 트럼프를 두고 이건 뭐냐는 듯 지켜보던 주류언론이 하나둘 비판적 관점으로 돌아서는 것을 봤다. 보수논객인 조지 윌과 빌 크리스톨이 트럼프로부터 등 돌리고, 폭스뉴스의 간판앵커 매긴 켈리마저 트럼프와 틀어지는 순간 ‘머로 순간’이 온다고 그는 외쳤다. 그 외침이 무색하게,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때는 물론 아직까지도 미국 주류언론이 좌파 지배를 받고 있고, 따라서 좌편향적 주류신문과 방송으로부터 기대할 게 없다고 믿고 있지만 말이다.

2024년 한국 언론에 ‘머로 순간’이 오고 있다. 최근 조선일보 논설을 읽다보면 분명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동아일보에서 현 정부를 비판하는 사설과 논평을 내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다. 채 상병 사건, 의대 정원 증원 사태, 제22대 총선, 대통령부인 관련 의혹들이 줄지어 터질 때마다 정부·여당에 대해 점잖게 지적하며 정치적 훈수를 아끼지 않던 보수언론은 이제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논조로 변하고 있다. 인터넷 채널에서 활동하는 보수논객들 중 이런 게 보수냐, 이런 게 나라냐며 험한 말을 하는 이들도 나온다.

‘머로 순간’이라 하지만, 머로 혼자 그걸 만든 게 아니라는 데 주의해야 한다. 이 용어를 소개한 민디치도 그렇게 봤다. 주류방송인 CBS가 종군기자로 명성 높던 머로의 입을 빌려 매카시 의원에게 일격을 날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당대 수많은 기자들이 매카시의 좌파몰이를 문제 삼아 보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카시 자신도 문제였다. 그가 합리적 의심을 표명하는 수준을 넘어 광기에 가까운 빨갱이 사냥으로 넘어가자, 당대 언론은 물론 공화당 의원들마저 그가 선을 넘었다고 봐 좌파몰이에서 발을 뺐다.

언론학자 캠블은 ‘머로 순간’을 미국 언론이 만든 일종의 신화라고 봤다. 머로의 <지금 봐라> 방송은 당대 매카시 비판보도를 선도한 게 아니라 뒤따르는 보도였고, 따라서 영향력도 제한적이었다고 한다. 당시 기록을 보면, 매카시가 본격적으로 빨갱이 사냥을 시작하기 전부터 그를 좇으며 비판적으로 보도한 폭로전문 기자가 있었고, 그의 대담한 성공과 의심스러운 주장, 그리고 이어진 몰락을 충실히 기록한 주류언론의 기사들이 있었다. 실로 머로를 추존하는 의식은 미국의 주류언론이 해석보도를 본격 도입한 1960년대 그리고 정부 정책에 대한 적대적 보도를 서슴지 않던 1970년대 언론활동으로 강화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의 ‘머로 순간’은 언제 어떻게 등장할까. 한국 언론의 ‘두 개의 탑’, 즉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보도와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에서 단서를 찾아보자. 일단 비판적 논설과 의견만으론 안 된다. 좌든 우든 한국 언론이 당대 정권을 이리저리 비판한 것만으로 결정적 변화를 만든 적은 없다. 그런 비판은, 노무현 정권 말기를 돌이켜보면, 오히려 일부 시민의 깊은 원한만 살 뿐이다. 논설실이 아니라 편집국이 뛰어야 한다. 결정적 사실에 대한 폭로보도,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추가보도, 그리고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시민의 깨달음이 이어지면서 뭐가 되어도 된다. 앞으로 어찌 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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