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책은행들이 기후공시 시행을 앞두고 투자·대출 기업의 탄소 배출량 파악에 분주하다. 금융회사가 투자나 대출을 통해 거래기업의 탄소배출에 간접 기여한 규모를 파악하는 금융배출량 산정이 예고되면서다.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은 연초 들어 일제히 기후공시에서 요구하는 스코프(scope)3 산정 데이터 수집에 착수했다. 스코프3는 기업의 소유, 통제 범위 내 배출원을 넘어 가치사슬 내에서 발생한 간접 온실가스까지 모두 측정하는 배출량 측정기준이다.
금융당국에서는 기후공시 도입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가운데 최우선 과제로 두고 관련 사안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이후부터는 의무화 도입 시기를 정하기 위한 논의가 다시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저탄소 전환에 대한 요구가 큰 국책은행도 상업은행에 비해 발빠르게 관련 준비에 나서고 있다.
국책은행의 당면 과제는 고탄소업종에 대한 투자·대출 포트폴리오와 익스포저를 파악하는 일이다. 금융기관의 탄소 배출량, 특히 스코프3는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투자나 대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은행이 지난해 집계한 국내은행의 금융배출량은 2023년 기준 1.57억톤에 이른다.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추정치에서 국내은행의 금융배출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업종인 발전산업이나 시멘트 산업에 제공하는 금융권의 자금이 결국 배출량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국책은행이 빠르게 스코프3 산정에 나선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국책은행의 경우 여타 상업은행에 비해 고탄소업종에 대한 금융공급을 줄일 것을 요구받고 있다. 금융당국에서는 지난해 말 신용정보원에 탄소 관련 정보를 집적해 금융권의 금융배출량을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용정보원에서는 현재 금융권의 금융배출량을 파악하기 위한 플랫폼 구축에 한창이다. 기업금융분석지원시스템(EFAS)를 구축해 금융배출량 산정에 필요한 데이터를 금융기관에 제공하기 위해서다.
기업은행은 글로벌 기후관련 공시기준에 맞춰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를 개편하기 위한 컨설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행 및 자회사가 제공하는 금융에 대한 탄소배출 데이터를 산정하기로 했다. 수출입은행 역시 기후리스크 주요 측정 지표를 산출하고 분석하는 컨설팅을 실시하기로 했다. 산업은행 역시 배출량 파악은 물론 내부 연구소를 통해 여타 금융권의 금융배출량 파악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정책목적에 맞는 여신공급에 대한 요구가 국책은행에 우선 있을 수 밖에 없다”면서 “녹색여신 관리지침 제정 등 각종 규제가 논의되고 있는 만큼 공시 의무화에 앞서 선제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전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