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대 '아틀라스',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고도화…생산현장 투입 임박
로봇개 '스팟' 트럼프 당선인 경호 투입으로 화제
보스턴 다이내믹스 성공적 상장 청신호…기업가치 10배 폭등 가능성
지분 21.27% 보유한 정의선, 지배구조 개편 위한 2조 이상 '실탄' 확보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로보틱스 전문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연일 화제를 모으며 미국 나스닥 상장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정의선 회장이 직접 지분을 보유한 이 회사가 성공적인 상장으로 기업 가치가 급등한다면 정 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도 한층 힘을 받을 수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지난 4월 이족보행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아틀라스(Atlas)’ 2세대 모델을 선보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고도화 과정을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2013년 처음 공개된 1세대 아틀라스가 유압식으로 다소 거친 움직임을 보였던 것과 달리 2세대 아틀라스는 완전 전기 구동식으로 바꿔 정밀한 제어가 가능하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지난 4월 2세대 아틀라스 공개와 함께 바닥에 누워있던 아틀라스가 관절을 비틀어 일어나고 몸통을 360도로 회전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이어, 8월에는 아틀라스가 팔굽혀펴기를 안정적으로 해내는 숏폼 영상을 공개하며 화제를 모았다. 사람처럼 바닥을 짚고 능숙하게 자세를 낮췄다가 다리를 오므려 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작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구현하며 하드웨어 성능의 진보를 과시했다.
지난달 30일에는 공장에서 실제 사람처럼 일하는 2세대 아틀라스의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 아틀라스는 엔진커버 부품을 이동식 보관함으로 옮기는 역할을 수행했다.
아틀라스는 머리 부분의 카메라를 활용한 머신러닝 기반의 비전 시스템으로 시야 속의 공간과 물체를 정확히 인식했다. 뒤이어 매니퓰레이터(manipulator, 로봇 손)를 정교하게 움직여 엔진 커버 부품을 정확히 집은 후, 매니퓰레이터의 모양을 바꿔 부품을 확실히 꺼내는 모습까지 선보였다.
아틀라스는 부품을 집은 채로 목표 위치인 반대편의 부품 보관함으로 이동해 비좁은 공간에 부품을 정확히 꽂아 넣었다. 완벽하게 사물을 인지하고 정해진 임무를 수행하는 수준 높은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함께, 세밀함이 다소 떨어졌던 매니퓰레이터 기술이 눈에 띄게 개선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같은 달 31일에는 핼러윈 데이를 맞아 핫도그 모양의 복장을 한 아틀라스가 같은 작업을 수행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에서는 기술 시연 도중 부품 보관함의 위치를 바꾸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틀라스는 작업 수행 중 보관함의 위치가 바뀌자 곧장 동선을 수정했고, 별다른 이상 없이 부품 수납을 계속했다. 아틀라스가 미리 설정된 프로그래밍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실시간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두 차례의 영상 속 아틀라스의 모든 행동은 원격 조작이 없는 상황에서 이뤄졌으며, 인지와 판단, 그리고 제어 전 영역은 로봇의 자율적인 결정에 의해 진행됐음을 강조했다.
이들 영상은 아틀라스가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상태에서도 자율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휴머노이드의 생산현장 투입이 머지않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또 다른 히트작인 4족 보행 로봇개 ‘스팟(Spot)’은 최근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 경호에 투입되며 화제를 모았다. 트럼프 당선인의 저택이 위치한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 주변을 스팟이 순찰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순찰에 투입된 스팟에는 미국 비밀경호국을 뜻하는 ‘USSS’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미국 비밀경호국은 “로봇개는 비밀 경호국의 자산이며 이를 트럼프 당선인의 저택 보안을 위해 사용중”이라며 “로봇개는 우리의 경호 작전을 지원하는 감시 기술과 첨단 센서를 갖추고 있다. 폭탄과 화학 위협을 탐지하는 기술과 열 감지 센서, 고해상도 줌 기능을 갖춘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고 현지 언론에 설명했다.
아틀라스가 이족보행 하드웨어와 인공지능(AI) 제어를 통한 휴머노이드 기술 고도화를 위한 플랫폼이라면 스팟은 이미 상용화된 로봇 제품이다.
미국에서는 여러 자치단체 경찰들이 수색, 폭탄제거, 범인제압 등의 용도로 스팟을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현대차그룹 계열인 현대차‧기아, 현대제철은 물론, SK이노베이션의 정유‧화학 공장 단지인 ‘울산CLX’ 등 여러 공장에서 현장 순찰, 설비 확인, 위험 요소 점검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지난해까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로봇 운용에 필수적인 보행, 인지, 제어 기술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만큼 로봇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하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기업으로 꼽힌다.
국제로봇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Robotics)에 따르면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24억3000만 달러(약 3조4000억원)에서 2032년 660억 달러(약 92조4600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이때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45%에 달한다.
아틀라스와 스팟의 활약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상장 계획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상장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6월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했다. 현대차(30%), 현대모비스(20%), 현대글로비스(10%)가 지분 인수에 참여했으며, 정의선 회장도 사재를 동원해 20%의 지분을 확보했다.
당시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를 현대차그룹에 넘기고 잔여 지분 20%만 손에 쥔 소프트뱅크는 거래종결일부터 4년 이내, 즉 2025년 6월까지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상장시킨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때까지 상장하지 못할 경우 현대차그룹이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잔여 지분을 인수해야 한다. 애초에 상장을 염두에 둔 거래였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세 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대한 지분율을 85.08%까지 높였다. 정의선 회장도 유상증자에 참여해 21.27%까지 지분을 늘렸다.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은 소프트뱅크의 지분율은 14.92%까지 희석됐다.
인수 당시 11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조2000억원)였던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기업 가치는 상장 이후 10배 이상 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스팟의 트럼프 경호 투입이나 휴머노이드 시장 개화에 따른 아틀라스의 가치 조명 등의 호재가 잇따를수록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기업 가치는 더 치솟을 수 있다.
상장 이후 기업 가치를 10배로 가정했을 때 정의선 회장이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투자한 2000억원 플러스 알파(유상증자)의 자금은 2조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핵심 계열사 지분 인수를 통해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는 ‘실탄’이 마련되는 것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큰 틀에서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이 고리를 끊는 가장 간편한 방식은 기아→현대모비스의 모-자회사 관계를 해소하고 현대모비스를 정점으로 하는 지배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지배구조 개편과 함께 정 회장이 사실상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될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기아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17.66%를 인수하는 것이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4조원(20일 현재 현대모비스 시총 23조7137억원) 가량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성공적인 상장으로 2조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한다면 지배구조 개편에 필요한 자금의 상당부분을 마련할 수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 인사에서 재무통인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이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로 내정된 것도 정 회장의 승계 작업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정 회장이 지분 11.7%를 가진 계열사로 향후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핵심으로 거론돼 왔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마찬가지로 비상장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공개 역시 정 회장의 자금 동원력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2018년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이 시장의 반대로 무산된 상황에서 정의선 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정 회장이 많은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 회사들의 기업가치를 높여 상장하는 방식이 사실상 유일하다”면서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 그리고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상속세 인하까지 이뤄진다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한층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