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산적한 한투공... 박일영 사장, 개혁·쇄신 나서나
해외 국부펀드 대비 수익률↓... 전통 투자는 '마이너스'
외부 운용사 재위탁 수수료만 年 1천억대, 성과는 미진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한투공... 운용업무 곳곳 '구멍'
[편집자주] 박일영 한국투자공사 사장이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는 과거 기획재정부에 몸담았던 관료 출신이자,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및 상임이사를 역임했던 국제금융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지난 9월 취임사에서 박 사장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창출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했다. 나아가 “유능한 투자를 통해 국격을 높이고 사회에 기여와 공헌을 할 것”이라는 포부도 내비쳤다.
하지만 박 사장의 앞에 놓인 경영 현안은 녹록지 않다. 한 치도 내다보기 어려운 글로벌 투자시장의 파고 속에서, ‘혈세’로 이뤄진 국부펀드의 방향타를 잡아 나가야 하는 막중한 책임도 뒤따른다. 이를 위해선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투자운용과 인적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선결과제로 꼽힌다. <시장경제>가 한국투자공사에서 불거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과 그에 따른 해법을 짚어봤다.
국부펀드는 말 그대로 나라(國)의 부(富)를 늘리기 위한 펀드라고 할 수 있다. 한국투자공사는 기획재정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정부와 한국은행 등으로부터 위탁받은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쉽게 말해, 정부의 외환보유고를 '종잣돈'으로 해외의 주식·채권·외환·부동산 등에 투자해 국고를 불리는 기관이다.
올해 5월말 기준 위탁자산은 총 1175억 달러(약 163조원)이다. 기획재정부가 876억 달러(약 121조원), 한국은행이 300억 달러(약 41조원)를 각각 위탁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공사가 벌어들인 총투자수익은 843억 달러(약 116조원)에 이른다. 총운용자산 규모로는 1959억 달러(약 270조원)라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세계국부펀드 기금규모 순위로는 13위다.
그러나 한국투자공사의 운용수익률은 위상에 걸맞지 않게 자못 초라해 보인다. 한국투자공사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올린 평균 투자수익률은 7.09%였다. 이는 국민연금이 기록한 7.43%보다도 떨어지는 수준이다.
해외 주요 국부펀드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각각 ▲노르웨이(GPFG) 9.47% ▲일본(GPIF) 9.91% ▲캐나다(CPPIB) 8.54% 등으로 한국투자운용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모습이다.
수익률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주식과 채권 등 전통 투자 부문에서의 부진이다.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초과수익을 내지 못한 탓이다. 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운용인력과 전문성 부재, 높은 퇴직률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먼저, 비효율적인 ‘간접운용’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투자공사는 자산을 직접 운용하는 직접운용 방식과 외부 운용사에 자금을 재위탁하는 간접운용 방식으로 이원화해 투자하고 있다. 전자는 위험이 적고 안정적이나 수익율이 비교적 낮다. 후자는 위험도가 높은 대신 높은 수익을 내는 투자전략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정반대였다. 최근 3년간 수익률에서 직접운용방식이 간접운용방식보다 크게는 3.06%p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초과수익률에서도 직접운용은 –0.28%에 그쳤지만, 간접운용은 –1.85%로 되레 손실이 더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투자공사가 해당 기간동안 외부 운용사에 지급한 수수료만 4082억원에 달한다. 인건비의 약 3.4배에 해당하는 액수다. 비싼 수수료를 내고 외부에 자산운용을 맡겼지만, 한국투자공사가 자체적으로 굴린 돈이 더 높은 수익을 냈다는 의미다.
지난 21일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한국투자공사의 이 같은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한국투자공사를 대상으로 한 질의에서, 외부 운용사에 대한 ‘성과보수’ 체계의 부재를 수익률 하락의 한 요인으로 꼽았다.
박수영 의원은 “노르웨이·일본·캐나다 국부펀드는 전부 기본보수와 성과보수를 함께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기본보수 뿐”이라며 “외부 운용사 입장에선 투자수익을 더 내야 할 요인이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은 보수체계를 개선해 기본보수는 낮추고, 성과보수는 상한선을 없앴다”며 “성과보수를 일부만 당해 지급하고, 유보된 금액은 다음 해부터 순차적으로 지급하는 이연지급 체계 도입으로 단기성과만을 추구하는 부작용도 막고 있다”고 부연했다.
외부 운용사에 대한 한국투자공사의 의존도가 적지 않지만, 관리감독에 ‘구멍’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자산을 위탁한 외부 운용사의 가이드라인 위반 사례가 매년 반복되고 있음에도, 이를 전담하는 부서가 없어서다. 미흡한 관리감독 체계로 인해 불필요한 손해도 발생하고 있다.
한국투자공사가 박수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외부 운용사의 가이드라인 위반 사례는 ▲2020년 9건 ▲2021년 2건 ▲2022년 1건 ▲2023년 2건 ▲2024년 1건이었다.
일례로 한국투자공사는 2015년경 스위스의 한 운용사에 1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위탁했다가, 1억 3000여만원의 세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당시 과세당국은 한국투자공사가 스위스 운용사에 수수료 명목으로 낸 100만달러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국투자공사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전문인력 확충도 절실하다. 한국투자공사의 정규직 정원은 293명이지만, 현재 근무하고 있는 인원 수는 265명에 그친다.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다 보니, 전통자산에서 직원 1인당 감당해야 하는 운용자산 규모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투자공사의 1인당 운용규모는 약 5억 7000만 달러였다. 캐나다(CPPIB)는 2억 6000만 달러, 싱가포르(GIC)는 3억 8000만 달러 수준이다. 이에 따른 업무 부담 가중이 수익률 하락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퇴직률로 인한 인력 공백 현상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업무 숙련도가 높은 전문인력들의 ‘퇴사 러시’로 남은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자산운용의 질도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5년간 한국투자공사 전체 퇴직률은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6.7%, 8.9%로 정점을 찍었다가 지난해에는 4.9%, 올해 9월 기준으로는 1.8%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전통투자 운용역 퇴직률은 사정이 다르다. 2022년 12.3%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 3.4%로 내리기는 했지만 올들어 5.5%로 다시 상승하는 모습이다. 핵심 인력인 투자 운용인력의 유출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특히 해외주재원의 경우에는 근속기간 3년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1년 남짓한 기간동안 근무 후 퇴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1년간 해외 주재원의 평균근속기간은 13.8개월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박수영 의원은 "한국투자공사는 대행 업무를 하는 곳이 아니라 수익을 내야하는 기관"이라면서 "많은 문제들이 공직자로서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지 않는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한국투자공사측은 외부 운용사에 대한 성과보수제를 도입하는 것이야말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투자공사의 관계자는 “글로벌 업계에선 성과보수제를 도입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라며 “성과보수제를 도입할 경우, 운용사들이 성과를 내기 위해 과도한 리스크를 감내하려 할 것이므로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현재 공사는 장기성과 부분에서 부진한 운용사들은 비중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운용하고 있다”며 “전통자산을 제외한 대체자산에 대해선 성과 수수료가 포함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인력부족과 관련해선 “현 정원의 90% 수준인데, 외부에선 부족해 보일수도 있다”며 “공공기관인 만큼, 민간 운용사보다 전문인력에 대한 대우가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성과보상체계 강화 등의 대응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직 4분기가 남아있으나, 현재 수준으로 전체 퇴사율은 1%대”라며 “퇴사율을 줄이기 위해 보수 외에도 해외 연수 및 근무기회 제공으로 유인방안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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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표 기자 yukp@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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