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 신탁 해지 수수료로만 수백억…ELS 사태 '나비효과'

2024-11-14

올해 상반기만 226억 수익

4대銀 합산 대비 6배 달해

손실 우려 고객 이탈 '이면'

SC제일은행이 신탁 상품을 만기 전에 깨는 고객들로부터 올해 들어 반년 동안에만 230억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거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4대 시중은행의 같은 수수료 수익을 모두 합한 것보다 여섯 배 가까이 많은 금액인 데다, 제일은행의 신탁 사업 규모가 이들에 비해 한참 작은 현실까지 고려하면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로 공포를 느낀 고객들의 이탈이 많아진 영향에 더해 신탁 상품을 전략적으로 확장해 온 제일은행의 선택까지 맞물린 결과로, 이제는 성장 전략만큼 소비자 이익에도 보다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KB국민·신한·하나·우리·제일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의 중도해지수수료 수익은 총 267억4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9.0% 늘었다. 해당 수수료는 고객이 은행에서 가입한 신탁 상품을 계약 기간 중 해지해 발생한 비용이다.

은행별로 보면 제일은행의 신탁 중도해지수수료 수익이 226억5000만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324.7% 급증하며 조사 대상 은행들 중 최대를 기록했다. 우리은행 역시 15억6400만원으로, 하나은행은 12억9300만원으로 각각 226.5%와 176.3%씩 해당 금액이 증가했다. 신한은행은 11억8500만원으로 국민은행은 1200만원으로 각각 56.1%와 71.4%씩 늘었다.

이처럼 은행들의 중도해지수수료 수익이 확대됐다는 건 그만큼 신탁 상품을 중간에 깬 가입자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이는 최근 금융권을 강타했던 홍콩 H지수 폭락의 후폭풍으로 풀이된다.

올해 초 홍콩 H지수가 폭락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 ELS에서는 대규모 투자 손실이 발생했고, 이를 담은 은행 신탁까지 직격탄을 맞았다. 더 나아가 이런 불안이 은행의 상장지수펀드(ETF) 신탁까지 번지면서 고객 이탈이 이어져 왔다.

중도해지수수료 수익이 가장 많았던 제일은행 측은 "홍콩 ELS 사태 여파로 불안을 느낀 고객들이 ETF를 해지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흐름을 고려해도 제일은행이 신탁 중도 해지자들로부터 거둔 수수료 실적은 유독 눈에 띄는 수준이다. 조사 대상 기간 4대 은행의 관련 수수료 합계는 40억5400만원으로 제일은행 대비 6분의 1 정도에 그쳤다. 개별 은행으로는 10억원가량으로 10배가 넘는 격차다.

더구나 제일은행의 신탁 사업 규모가 다른 주요 시중은행들에 비해 훨씬 초라한 현실임을 감안하면, 이같은 수수료 실적에 붇는 의문부호는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제일은행의 신탁부문 자산은 2조8389억원에 머물렀다. 4대 시중은행들의 신탁부문 자산이 ▲신한은행 126조9104억원 ▲하나은행 101조5190억원 ▲국민은행 100조1099억원 ▲우리은행 80조3680억원 등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격차다.

특히 제일은행은 최근 몇 년 동안 신탁 사업을 확장하는데 주력해 온 은행이다. 제일은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사태 이후인 2021년쯤부터 퇴직연금 ETF 신탁 상품이 은행권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를 당시 적극적으로 ETF를 판매해 온 은행 중 한 곳이다. 대출을 늘려 이자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비이자 상품을 판매해 신탁보수 등 수수료를 늘리는 전략을 펼쳐 왔다.

ETF는 퇴직연금에서 강력한 투자 수단이다.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고 투자 내역도 고객이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다. 위험도가 높은 만큼 수익률 제고에도 효과적인 상품으로 꼽힌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은행 신탁 시장이 성숙한 만큼, 작은 소비자 혜택도 챙길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객을 유치하고 묶어두기 위한 수익률 관리도 중요하지만, 떠나가는 이들을 위한 비용 부담 완화에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탁 상품에 대한 수요는 물론 소비자들의 이해도도 높아지면서 상품 갈아타기를 고민하는 고객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수수료 비용은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은행 입장에서는 가입자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허들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수수료 감면 혜택을 확대하는 게 고객을 다시 찾게 만드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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