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우리가 당사자니까 아무도 끼어들지 말라’고 해왔는데, 정작 우리 스스로는 1년이 다 돼가도록 ‘2000명 백지화’ 말고 어떤 대안을 제시했는지 의문입니다.”
서울 소재 한 대형병원을 사직한 전공의 A씨의 말이다. A씨는 6일 통화에서 “지난 9월까지는 (복귀를 거부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방향에 완전히 동의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투쟁의 목표가 그냥 ‘누워있기’로만 끝난다면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명분을 잃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의대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의대생들의 집단 사직·휴학이 9개월째 접어든 가운데, 장기화되는 집단행동에 A씨처럼 불안감을 갖는 이들도 늘어나는 조짐이다. 특히 전공의 단체인 대전협 지도부가 이른바 ‘탕핑’(躺平·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의 중국어) 전략으로 일관하는 데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는 실익을 고려해 복귀하는 것도 고려하는 분위기다.
대전협을 이끄는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4일 페이스북에 “(의대생들은) 내년에도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며 “사직한 전공의들도 내년 3월이면 입대해야 한다. 그들이 떠난 자리, 함께 고생했던 동료들을 두고서는 저도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내년에도 전공의·의대생의 ‘단일대오’는 굳건할 것이라 강조하는 메시지를 낸 것이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이렇게 무조건 ‘1년 더 투쟁’을 외치는 것에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다른 서울 소재 종합병원 사직 전공의 B씨는 “벌써 다음 주면 수능이라 내년도 정원은 바꾸기 어려워 보이는데, 대전협은 여전히 ‘2025년도 증원 철회’ 요구만 하고 있다”며 “내년에도 이렇게 시간만 흐르면 어떻게 되는 건지, 대전협의 계획은 무엇인지 등을 전혀 공유하지 않은 채 그냥 ‘1년 더 (투쟁) 한다’고만 하고 있어 이게 맞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협이 정부와 대화를 거부할 뿐 아니라, 내부 소통에 소홀한 것에 대한 불만 목소리도 크다. 사직 전공의 A씨는 “박단 위원장은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대다수 전공의 의견인 것처럼 메시지를 내고 있다”며 “자신의 인생 계획 등을 고려해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지만, 대표가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글을 쓰면서 일종의 ‘또래 압력(peer pressure)’으로 복귀를 억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증원뿐 아니라 진료지원(PA) 간호사, 원격 의료 합법화 등 의료계 현안들이 많은데, (대전협이) 소통 창구를 막으면서 이런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내고자 하는 기회까지 막혀버렸다”고 토로했다.
뚜렷한 방향성 제시 없는 투쟁 장기화에 복귀를 고려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수도권 소재 종합병원 사직 전공의 C씨는 “우리가 사직한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가 추진한 정책 때문인데, 박 위원장은 정부보다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임현택 회장에 대한 저격을 더 많이 하고 있다”며 “사태가 해결될 실마리가 안 보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진짜로 ‘돌아가야겠다’는 이들이 꽤 된다”고 말했다. 이어 “대전협이 계속 이렇게 내부 소통이 안 된다면, 다른 전공의 모임을 구성하려는 움직임도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선배’들을 바라보며 수업을 거부해온 의대생들의 동요도 감지된다. 교육부가 휴학계 승인을 각 대학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기로 하면서 일단 올해 쉰 두 학기는 휴학 처리가 가능해졌지만, 내년에도 복귀하지 않을 경우 제적 위기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서울 소재 의대 본과생 D씨는 “전공의들은 의사 면허가 있어서 그런지 별로 마음이 급하지 않은 것 같다. 대전협도 그다음 계획이 없어 보인다”며 “그간 동기들 대부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분위기였지만, 이런 식으로 내년까지 흘려보낼 수는 없어 불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지방 소재 의대 예과생 E씨도 “시간이 아까워서 내년에는 복학 하고 싶다.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며 “선배들이 책임져줄 것도 아닌데 우리만 피해 보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