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전 세계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이 가장 풍부한 나라 중 하나인 이란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순환 정전'에 돌입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전기를 강제로 끊는 것이다.
미국 등 서방이 이란에 대대적인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에너지와 전기 생산과 공급 능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란은 석유 매장량은 전 세계에서 세 번째, 천연가스는 두 번째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이란 현지 매체를 인용해 "인구가 950만명에 달하는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월요일(11일)부터 매일 2시간씩 정전이 시행된다"면서 "이에 앞서 일요일에는 여러 지방 도시들이 정전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석유·천연가스 대국이) 에너지 공급 경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지난 수 년 간 전력 생산 분야에 투자가 줄면서 생산 능력이 크게 위축됐다. 발전소들은 주요 설비가 아주 낡고 보수·유지가 안돼 전기를 충분히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겨울철 기온 강하로 (난방용) 천연가스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발전소도 발전용 가스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올 겨울 이란이 하루 2억6000만㎥의 천연가스 부족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화력발전소 3곳이 심각한 대기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연료 '마주트(Mazut)' 사용을 중단하면서 천연가스 부족 현상은 더 심해졌다. 화력발전소는 마주트와 천연가스를 둘 다 쓸 수 있는데, 마주트 사용 중단으로 천연가스 수요가 더 늘었다는 것이다.
이란 부통령 겸 환경부 장관인 시나 안사리는 "세 곳의 화력발전소에서 마주트 사용을 중단함에 따라 정부는 전국적으로 예정된 정전을 시행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란의 에너지와 전력 부족 현상은 서방의 경제 제재에 따르는 필연적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란은 지난 2015년 세계 주요 6개국과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를 타결했다. 이란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신 서방은 이란에 대한 각종 경제·금융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이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이 함께 참여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첫 임기 때인 지난 2018년 5월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전략의 일환으로 이 합의에서 전격 탈퇴했고, 이후 이란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크게 강화됐다.
지난 7월 취임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미국·서방과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면서 그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전력 부족 현상이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금의 난관에서 벗어나려면 새 발전소를 건설하거나 낙후된 시설을 교체·보수해야 하는데 촘촘하게 형성된 글로벌 제재망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란 의회 에너지위원회 위원인 아마드 모라드는 지난 10일 "우리 국가 전력망에서 총 2만MW의 전력이 부족하다"며 "발전 용량 부족, 발전소 문제, 송전선 노후화 등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란은 휘발유에 대한 정보 보조금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의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0.02 달러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