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의 고기들은 한류와 난류의 교차를 이용하여 저들의 족속을 늘리고 있는데, 어찌하여 뭍의 사람들은 미국과 소련 세력의 교차를 좋게 이용하지 못하고, 이 때문에 도리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자아내고 있을까. 사람이 물고기보다 영리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역사학자 김성칠이 1950년 11월21일 서울에서 쓴 일기이다. 그는 1929년, 대구고등보통학교 3학년 때 독립운동 조직을 이끌다 일제 총독부 재판소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후 서울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던 그는 6·25 시기, 북한의 침공을 받고 한강 다리가 끊어져 피란조차 갈 수 없었던 서울 시민의 한 사람이 됐다. 그는 인민공화국 치하를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일기를 썼다. 안타깝게도 그는 39세의 나이에 괴한의 저격으로 사망했으나 그의 6·25 일기는 1993년 <역사 앞에서>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김 교수가 조선 사람들이 동해 물고기보다 영리하지 못하냐며 안타깝게 호소하던 날로부터 75년이 지났다.
한반도에서의 외세의 교차는 끊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한(조선)과 군사동맹이 됐다.
일본은 올해 한반도를 동중국해, 남중국해 일대와 묶는 ‘하나의 전쟁구역’ 개념을 공식화했다. 이 단일 전쟁구역 개념에서는 주된 위협으로 중국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주한미군의 역할도 중국에 맞춰진다.
일본의 단일 전쟁구역 제안은 미국의 전략을 내다본 것이다.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 3월30일 도쿄에서 이시바 일본 총리, 나카타니 방위상과 대담하며 일본이 ‘공산주의 중국’과 맞서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최전방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오는 6월3일 선출될 21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맞닥뜨릴 외교안보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단지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관세만의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동맹이 다시 형성되는 가운데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중국 봉쇄로 이동하고 있다. 일본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립해 한반도 비상시 참전을 구조화하고 있다.
새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은 국민을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권력자의 내란을 진압해 세계 민주주의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나라다. 한국은 세계 12위권 경제 규모를 가진 모범적 민주국가다.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민주주의에서 세계의 표준이 되는 나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터 잡아야 한다. 나는 이를 국민주권을 뿌리로 하는 ‘국민주권 외교안보’라고 부른다.
일본이 내놓은 단일 전쟁구역 개념은 한국을 중국과의 군사적 대립 전선으로 끌고 가는 것으로, 국민주권 원칙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대신 한국의 새로운 정부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러시아와 미국의 화해를, 역사학자 김성칠의 표현을 빌리면, ‘좋게 이용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러시아는 공산주의 소련이 아니다. 중국과 경쟁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러시아와의 협력은 유익하다.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러시아 정책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북한이 러시아를 통해 미국에 요구할 적대관계 해소에 관여해야 한다. 러시아를 매개로 북한과 미국이 대화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동아시아 신데탕트’를 적극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날로 강화되는 북한의 핵 능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실질적으로 억제하며, 자주적 대응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먼저다. 한국의 새 대통령은 중국 봉쇄에 주한미군을 유연하게 사용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줄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핵물질 원료조차 수입해야 하는 나라에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핵추진 잠수함 등은 자주적 억제 수단이 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