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의 그래디 리틀이 된 2024년의 이바타 히로카즈

2024-11-24

2003년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메이저리그(MLB)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7전4선승). 6차전까지 양팀이 3승3패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월드시리즈 진출의 향방이 갈릴 최종 7차전이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양키스가 로저 클레멘스, 보스턴이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선발로 낸 이 경기에서 보스턴은 7회까지 5-2로 앞섰다. 선발 대결에서 클레멘스가 3이닝 4실점(3자책)에 그친 반면, 마르티네스는 솔로홈런 2개만 허용하고 7회까지 막아냈다.

이 경기를 앞두고 테오 엡스타인 당시 보스턴 단장은 당시 사령탑이었던 그래디 리틀 감독에게 ‘마르티네스가 80구를 넘어서면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시 80구 이후 마르티네스의 피안타율이 급격히 치솟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르티네스는 7회까지 78개를 던졌다. 엡스타인 단장의 조언대로라면 8회에는 다른 투수가 올라왔어야 했다. 하지만 리틀 감독은 마르티네스를 8회에도 올렸다.

마르티네스는 첫 타자 닉 존슨을 유격수 플라이로 잡아냈지만, 7개의 공을 던졌다. 리틀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했다. 80구를 넘긴 상황. 마르티네스의 힘이 떨어진 것이 확연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리틀 감독은 마르티네스를 믿고 그냥 마운드를 내려왔다. 승부의 향방이 갈린 순간이었다.

이후 결과는 모두가 다 알고 있다. 마르티네스는 데릭 지터에게 2루타, 버니 윌리엄스에게 적시타를 맞고 1점을 내준 뒤 마쓰이 히데키와 호르헤 포사다에게 연속 2루타를 맞고 5-5 동점을 허용한 가운데 초라하게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리고 보스턴은 연장 11회말 애런 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고개를 떨궜다. 시리즈가 끝난 후 리틀 감독은 해고됐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나 일본 도쿄돔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24일 열린 일본과 대만의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2024 결승전. 조별리그와 슈퍼라운드에서 일본을 만나 모두 패했던 대만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4-0으로 승리, 처음으로 대회 정상에 올랐다.

이날 경기 역시 초반 투수전으로 전개됐다. 그러다 5회초 대만 공격에서 승부가 순식간에 갈렸다. 이날 일본 선발이었던 도고 슈세이(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선두 타자 린자정에게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솔로 홈런을 맞고 선취점을 내줬다.

투수 교체를 고민해볼 상황. 하지만 이바타 히로카즈 일본 야구대표팀 감독은 그대로 도고를 밀어붙였다. 이후 도고는 후속 타자 장정위를 헛스윙 삼진 처리하며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듯 했으나 전전웨이에게 안타, 린리에게 볼넷을 내주고 1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이 타이밍은 투수 교체를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바타 감독은 도고를 믿었다. 그리고 도고는 전제셴과 7구 접전 끝에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스리런홈런을 날렸다. 이날 경기의 방점이 찍히는 순간이었다.

MLB닷컴에 따르면, 경기 후 이바타 감독에게 이 장면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바타 감독은 이에 대해 “그는 요미우리의 에이스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구원투수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난 그가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를 믿었다”고 말했다.

도고는 이번 시즌 26경기에 등판해 12승8패 평균자책점 1.95의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센트럴리그 다승 공동 4위, 평균자책점 5위에 올랐고 완투(4회), 완봉(3회)에서는 한신 타이거즈의 사이키 히로토와 공동 1위였다.

만약 저 상황이 정규시즌의 한 경기였다면 이바타 감독의 선택은 아쉽긴 하더라도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기전이었고, 그것도 우승이 걸려 있는 결승전이었다. 조금 더 신중하게 갔어야 했다. 2003년 마르티네스도 정규시즌 14승4패 평균자책점 2.22, 조정 평균자책점이 211에 달하는 특급 에이스였다. 결정적인 순간 주위의 조언을 무시한 결과는 다잡은 월드시리즈 티켓을 날려버리는 뼈아픈 역전패였다.

일본 ‘더 다이제스트’는 “도고는 5회를 간신히 마무리했다. 하지만 4회까지 62개의 공을 던진 그를 또 마운드에 올린 이바타 감독의 판단이 논란이 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바타 감독의 투수 교체 타이밍에 큰 비난이 일고 있다는 소식을 알렸다. 슈퍼라운드까지 전승 가도를 달리다 마지막 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홈에서 뼈아픈 준우승에 머문 일본 야구가 큰 상처를 입었다.

한국프로야구(KBO) KIA 한화 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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