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1학년, 학문의 세계란 것이 새롭고 신기해 보이기만 하던 때, 교수님이 학술대회가 무엇인지, 어떤 분위기인지 설명하면서 재밌는 일화 몇 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한번은 어떤 연구자가 이방원 일파에게 정몽주가 맞아 죽은 장소가 개성의 선죽교가 아니라고 했다가 청중에게 거센 항의를 받았단다. 선죽교에는 정몽주의 핏자국이 남아 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뭔가 그 충절을 의심하는 듯이 들린 걸까. 또 어떤 연구자는 유명한 조선시대 학자를 존칭을 붙이지 않은 채 호가 아니라 이름으로 불렀다가 청중의 격한 항의를 했다고 한다. 말로만 항의한 것이 아니라 물건을 투척했다는 소문도 있었단다. 모두 그 역사적 인물에 너무나도 몰입한 나머지 조금의 비판이나 다른 이야기도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다.
학생들이 깔깔대고 다 웃고 나자 교수님이 지긋이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논문 쓸 때는 존칭 같은 것은 쓰지 않습니다. 중립적으로 이름만 그대로 쓰는 겁니다.” 그러하다. 역사학자들은 논문을 쓸 때 역사 인물에 존칭을 붙이지 않는다. 세종이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그냥 세종이지, 세종대왕이라고 하지 않으며, ‘세종이 했다’고 하지, ‘세종께서 하셨다’고 하지 않는다. 존칭만 안 붙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최대한 건조한 태도를 견지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다 보니 글이 재미없어지는 경향도 없진 않다.
건조한 서술을 이어나간다 해서 역사학자들이 인물이나 사건에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료를 읽다 보면, 감정이 동요한다. 가슴 아픈 사례도 많고 분통 터지는 사건도 많다. 글을 읽다가 절로 좋아지고 존경하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읽으면 읽을수록 이런 나쁜 놈이 있나 싶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가능한 한 자제하려 한다.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너무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 무언가 심판을 내리거나 편을 들고 싶어지고, 그러면 전체적인 맥락, 사건의 인과 등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건조한 태도가 바로 오늘 설명하려고 하는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9조, “감정이입만큼이나 ‘감정이출(出)’도 중요하다”이다.
‘감정이출’이란 대상과 나 사이에 일정한 감정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된 데에서 벗어나, 감정적으로 동조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역사적 상황과 맥락을 좀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입을 많이 하면 그 사건이나 인물에 깊이 몰입하게 되고, 그 입장에서 모든 상황과 결정을 판단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확한 인과관계와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이에 비해 ‘감정이출’은 인지적 공감으로 이어진다. 인지적 공감은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추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갖추게 되는 공감을 말한다. 역사학에서는 한 인물의 시점만이 아니라 다양한 관련인들의 시점과 상황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인간과 사회는 복잡한데, 역사학은 그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이해하려고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만약 단순 명료하게 한 가지로, 혹은 한 인물의 시점으로 역사를 다 설명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역사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정몽주는 집으로 돌아가다 동네 어귀에서 살해당했다. 선죽교에서 멀지는 않다. 이성계와 함께 우왕을 폐위하는 데 참여한 이 노회한 정치가가 조선에서 어떤 과정과 이유로 충절의 상징으로 바뀌는지, 16세기 후반 이후 정몽주가 죽임을 당한 장소로 선죽교가 부상하며 극적인 설화까지 붙은 것은 그러한 의미 변화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그건 그것대로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학적 연구 대상이다. 설령 가슴이 뜨거워지더라도 최대한 머리를 차갑게 식히는 것, 사실 모든 학문의 기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