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선종에 가려진 이탈리아 해방 80주년 기념일

2025-04-26

1945년 4월25일 나치 독일 점령에서 해방

나라 안팎 관심은 온통 교황 선종과 장례뿐

좌파 “극우 정권, 해방 의미 축소에 안간힘”

이탈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점령에서 벗어난 지 80주년이 되었다. 경사스러운 일임이 분명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善終)과 장례 일정 등에 가려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지나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25일(현지시간) 신화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해방 80주년을 맞아 로마, 밀라노, 피렌체 등을 비롯한 이탈리아 전역에서 다양한 기념 행사가 열렸다. 전국의 국립 박물관과 공원 등은 이날 하루 시민들의 무료 입장을 허용했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로마 베네치아 광장에 있는 ‘조국의 제단’(Altar of the Fatherland)에 헌화하고 이탈리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기렸다.

조국의 제단은 19세기 이탈리아 통일의 위업을 이룬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국왕을 위한 기념관인데, 이탈리아의 국가적 행사가 주로 이곳에서 거행된다.

이탈리아는 독재자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통치하던 1930년대 히틀러의 나치 독일 그리고 군국주의 일본과 동맹을 맺었다.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대전이 일어났을 때 이탈리아는 한동안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다가 1940년 6월 독일 편에서 영국·프랑스를 상대로 선전 포고를 하며 전쟁에 뛰어들었다. 추축국의 일원이 된 이탈리아는 발칸 반도와 북아프리카를 차지해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길 꿈꿨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군사력은 동맹인 독일은 물론 연합국 일원인 영국에도 크게 못 미쳤다. 이집트를 침공하려던 이탈리아의 계획은 영국의 저지에 막혀 수포로 돌아갔다. 1942년 북아프리카에 상륙한 영국군과 미군은 그곳에 있던 이탈리아 군대를 모두 몰아낸 데 이어 이듬해인 1943년 7월에는 이탈리아 최대의 섬 시칠리아를 점령했다. 연합군이 이탈리아 본토에 상륙하자 패닉에 빠진 무솔리니 정권은 무너졌다. 결국 1943년 9월 이탈리아는 영국과 미국에 항복하고 전쟁에서 이탈했다.

문제는 동맹국의 배신에 화가 난 독일이 군대를 보내 이탈리아 북부를 장악한 점이다. 그로 인해 이탈리아는 남부는 연합군, 북부는 독일이 각각 점령한 채 분단된 상태에 놓였다. 이탈리아 북부는 2차대전 종전 직전인 1945년 4월25일에야 나치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바로 이날을 해방 기념일로 기리고 있다.

올해 해방 기념일은 80주년이란 점에서 의미가 무척 크지만 정작 이탈리아 국내외에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으로 나라 안팎의 시선이 온통 로마 바티칸 교황청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교황의 장례 미사가 해방 기념일 하루 뒤인 26일 거행되는 것으로 결정되며 해방 기념일에 대한 관심은 더더욱 줄었다. 마침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우파 연립정부에는 과거 무솔리니 정권과 비슷한 극우 이념을 표방한 정당도 포함돼 있다. 일각에는 멜로니 총리 역시 극우 정치인에 속한다고 여기는 시선도 있다.

이탈리아 좌파 세력은 바로 이 점을 들어 ‘파시즘에 물든 멜로니 정권이 80주년 해방 기념일을 반기지 않는다’는 취지로 꼬집었다. 교황 장례 일정을 감안해 해방 기념일 행사를 가능한 한 간소하게 치르기로 한 멜로니 정부의 결정에 대해 좌파는 “핑계일 뿐”이라며 “교황의 선종마저 80주년 해방 기념일의 의미를 축소하는 데 악용했다”고 비판을 가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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