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유럽에서 대한민국까지 암각화 기차여행

2025-08-13

새 정부가 들어서니 통일에 대한 염원이 날로 더 커져만 간다. 누가 제지한다고 해도 이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통일된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남과 북을 왔다리 갔다리 한다? 단언컨대 지금보다 훨씬 역동적일 거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 속 새로운 뉴스가 나오면 남과 북을 결부시키는 나의 오래된 불치병은 오늘도 여전하다.

얼마 전 반구천의 암각화가 우리나라 17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바라고 바라던 일이지만 걱정이 앞선다.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는 것과 식수 문제가 항상 논란거리였다. 울산에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암각화가 물에 잠길 때마다 나 스스로도 정부나 지역사회 탓을 먼저 했던 것 같다. 울산 시민으로서 누구 할 것 없이 함께 고민하고 방향성을 찾아야 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고래와 호랑이 그림이 있는 ‘반구대 암각화’와 기하학적 무늬와 신라인들의 글씨가 있는 ‘천전리 각석’을 합한 이름이다. ‘천전리 각석’의 최초 발견은 1970년 12월 24일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학교 울산지구 불적 조사대’가 반고사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으며, 1973년에 국보 제147호로 지정됐다. 그리고 ‘반구대 암각화’는 그다음 해에 ‘천전리 각석’을 답사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의 제보로 발견됐다. 그 후 24년이 지난 1995년에 국보 285호로 지정됐다. 24년이 지나서야 국보로 지정되었다니! 왜지?

당연히 의문이 들것이다. 두 국보는 어느 것이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둘 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 ding Universal Value, OUV)를 가졌다. 그런데 왜 국보 지정에 22년의 차이가 났을까?

그 이유는 1965년에 건설된 사연댐 때문이다. 댐이 만수일 때는 무조건 암각화는 물에 잠긴다. 그래서 국보 지정이 늦었다 한다. 이 사실을 1990년 중반 무렵 대한민국 문화답사 열풍이 불었던 시기 울산의 역사 교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물에 잠겨 있는 국보는 없다’고 하였다.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발견됐지만 이후 최소 9년 이상 방치되다가 1982년에 울산시에 의해 가치가 평가되어 경상남도 기념물 제57호로 지정된다. 보물도 아닌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국보가 된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흑역사다.

포르투갈 포스 코아(Foz Côa) 암각화 보전 운동은 청소년인 학생들이 주도했다고 한다. 암각화 보존과 댐 건설 강행을 두고 갈등할 때 당시 학생들은 ‘암각화는 헤엄칠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암각화 보존을 주장했다. 결국 댐 건설은 중지됐고 코아 암각화는 구석기 시대를 품은 관광 명소가 되어 사람들은 이를 ‘코아의 기적’이라고 한다.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반면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다. 당시에 ‘반구대 암각화’를 국보로, 또 잠긴 암각화 보존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왜 하지 못했던가!

세계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사연댐을 허물어 대곡천을 재자연화해야 한다. 부족한 물 문제는 낙동강의 본류를 살리는 정책을 펴서 지금처럼 낙동강 물을 가져오면 된다. 운문댐 물을 가져온다는 발상도 같은 이유로 맞지 않다. 운문댐 물을 유지수로 방류해서 밀양강을 건강하게 하여 결국에는 낙동강 본류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사연댐은 자연히 댐의 기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의 수문 설치보다 댐을 허무는 대곡천의 재자연화가 좀 더 바람직하다. 그렇게 하면 항구적으로 암각화도 물에 잠기지 않고 또 더 넓은 수변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장은 ‘반구천세계암각화센터’를 건립하여 전 세계 유명 암각화 모형전시, 연구, 교육 등을 할 수 있는 최고 시설을 만들겠다고 한다. 취지는 좋으나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 애물단지인 시설을 많이 볼 수 있다. 알다시피 대표적인 곳이 영주 ‘선비촌’이다. 생각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또 다른 애물단지가 조성될 뿐이다.

암각화센터가 성공하려면 우리나라를 넘어 세상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 감히 제안 하나 하자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특화된 암각화 기차여행은 어떤가? 다행히 알타이 지역인 몽골, 러시아, 중국 이런 곳에도 세계문화유산인 암각화가 있다. 이들과 연계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먼저 남과 북이 기차를 통해 오갈 수 있어야 하니 이것이 남과 북의 길을 트는 또 하나의 변수가 될 것이다. 유럽에서 대한민국까지! 남과 북을 가로질러 유럽까지 가는 암각화 기차여행!

누가 아나? 여기에 더해서 이 여행이, TV만 켜면 나오는 수많은 여행 프로 중 떡하니 하나 자리 잡으면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있겠는가.

서민태 사회운동가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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