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윤석열, 카르텔 없앤다며 제 발밑 카르텔은 몰랐나···경호처의 240억 연구용역 부정 논란

2025-10-19

[주간경향]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연구개발)는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3년 6월 과학계를 이권 ‘카르텔’로 겨냥했다. 이듬해 R&D 예산은 7000억원 삭감됐고, 1만2000개 연구과제의 연구비가 줄었다. 그러나 정작 자기 발밑의 카르텔은 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R&D 예산이 대폭 삭감된 2024년, 대통령경호처가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발주한 240억원대 대형 연구과제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경호처 출신 인사가 대표로 있는 중견기업이 뚜렷한 기술력 없이 입찰에 참여해 과제를 따냈다. 이 과정에 다른 기업이 몰래 기술 조력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 더구나 몰래 기술을 제공한 업체는 당초 이 연구에 참여할 자격이 없었다. 해당 업체의 대표가 이 연구과제를 발주하기 전 과제의 타당성을 따지고 목표를 설정하는 연구재단 기획위원이었기 때문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시험문제 출제자가 신분을 숨기고 대리 시험을 치른 격이다. 그런 사업에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국가 R&D 사업을 두고 벌어질 수 있는 부정이 총망라된 연구 부정 의혹 사건의 전말을 살펴봤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국가연구과제에 참여한 중견기업 ‘에이치디에스’에 대한 연구과제 부정 신고가 최근 접수돼 조사가 진행 중이다. 에이치디에스는 용역경비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중견기업으로 지난해 7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과 함께 ‘지능형 유무인 복합 경비안전 기술개발사업’의 연구 수행자로 선정됐다. 신고 내용의 골자는 에이치디에스가 공식적으로는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A 업체의 기술을 활용해 연구 과제를 따냈다는 것이다. 에이치디에스 측은 여러 차례의 취재요청에도 답변을 피했다.

문제가 된 연구과제는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 시절 경호처가 AI 등 첨단기술을 적용한 경비 시스템 도입을 필요로 하면서 연구재단이 발주한 것이다. 총 연구 기간은 5년, 정부 지원 연구비는 240억원으로 책정됐다. 이를 ETRI, 에이치디에스 등 3개 기관이 따냈고, 정상적으로 수행했을 때 에이치디에스 측으로 돌아갈 몫은 70여억원이었다. 이 연구과제의 기획이나 선정에 관여했던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과제의 목표 중 하나는 CCTV나 경호요원의 보디캠, 로봇개 등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요인 경호에 적용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예컨대 AI를 통해 국가요인의 주변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심장 박동 등 생체정보를 수집·분석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식이다. 과제는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 것과도 관련이 있었다. 용산이 사방이 트인 개활지이다 보니 대통령실 주변 지역을 통합 관제하는 시스템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A 업체는 에이치디에스가 뚜렷한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채 이 사업 공모에 참여했다고 주장한다. 표면적으로는 에이치디에스가 입찰에 참여하지만, 뒤에서는 A 업체가 보유한 기술을 바탕으로 두 회사가 입찰 제안서를 공동 작성해 사업을 따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실제 에이치디에스의 지난 10년간(2015~2024) 감사보고서를 보면 연구개발비 지출이 이뤄진 해는 연구과제를 따낸 2024년이 유일했다. 국가연구과제에 기업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업부설연구소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이 회사에는 입찰에 참여하기 직전까지 연구소가 없었다. 에이치디에스는 연구재단의 공고가 이뤄지기 2주 전 연구소를 급히 만들어 인가를 받았다. 연구개발과는 거리가 있는 회사였던 셈이다.

연구재단은 지난해 4월 29일 이 연구과제에 대한 공고를 냈는데, 공고 이틀 만에 에이치디에스와 A 업체는 ‘경호시설 관제시스템 개발을 위한 협업 약정’을 체결했다. 약정서를 보면 해당 과제를 수행하면서 A 업체가 “관제시스템의 기획 및 설계, 개발에 대한 전반적인 제안 내용을 협업하여 작성”한다고 돼 있다. 그 대가로 정부가 주는 연구개발비는 에이치디에스가 55%를, A 업체가 45%를 갖기로 했다. 약정서에는 비밀유지 조항을 넣어 양측의 협력 사실을 외부로 공개하지 못하게 했다. A 업체가 에이치디에스와 나눈 e메일 등을 보면 A 업체는 제안서 일부를 작성하는가 하면, 에이치디에스의 요청에 따라 제안서 내용을 수정·검토하는 업무도 수행했다. 그러나 에이치디에스 측이 과제를 따낸 후 연구비를 배분하지 않으면서 A 업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공식적으로 연구에 참여하지 않는 업체의 기술을 도용해 연구과제를 따냈다면, 표절 등 연구 부정에 해당할 수 있다.

연구 부정 소지가 있는 것은 에이치디에스만이 아니다. A 업체 대표는 이 과제의 목표와 연구 항목 등을 설정하는 연구재단 기획위원이었다. 연구재단 기획위원회는 과제를 발주하기 전에 과제별로 꾸려진다. 기획위원은 과제의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입찰 참여가 제한되고, 과제 내용을 외부로 발설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서약서를 써야 한다. 그럼에도 A 업체는 에이치디에스를 도와 과제에 몰래 참여했다. 에이치디에스는 A 업체가 기획위원회의 일원으로 참여가 제한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A 업체의 손을 잡았다고 한다. R&D 예산 삭감 와중에 발주된 대형 연구과제가 연구 부정 의혹으로 얼룩진 셈이다.

경호처의 개입을 의심케 하는 정황도 있다. 연구재단이 정식으로 연구과제 공모를 하기 전부터 에이치디에스 측은 기업부설연구소를 만드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A 업체 대표 등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공고가 이뤄지기 한 달 전 경호처 인사들이 에이치디에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경호처 측은 에이치디에스가 가진 기술 역량에 대해서 듣고, 향후 공고될 연구과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고 한다. 수요처가 연구과제를 수행할 기업을 사전에 방문하는 건 이례적이다. 에이치디에스 대표는 경호처 출신이다. 당시 사정을 아는 관계자는 “경호처가 에이치디에스뿐 아니라 다양한 업체나 연구소를 만났고,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소개를 받았다. 연구과제와는 무관했다”고 설명했다. 경호처 측은 “대통령경호처에서 발주한 사업이 아니기에 관련 내용은 발주기관에 문의 바란다”고 답했다.

이 연구과제를 국가R&D 예산을 통해 수행할 필요가 있었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있다. 이 연구과제에는 경호처 예산과 국가R&D 예산이 반반씩 투입됐다. 국가연구과제는 연구 성과를 민간 영역 등에서 폭넓게 활용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따져 선정한다. 그러나 이 연구과제는 용산이라는 공간과 국가요인이라는 특정 경호대상에 특화된 부분이 있고, 경호처의 기존 통합관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측면도 있다. 더구나 당시는 국가R&D 예산이 대폭 삭감된 시기였다. 그럼에도 경호처 예산만이 아니라 국가R&D 예산이 투입된 것이다.

연구개발 전 과정에 보다 엄격한 관리가 요구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연구 수요처가 연구과제 공모 전에 과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기관이나 기업을 접촉하는 것을 제재하지 않고, 제재할 근거도 없다. 연구재단 측은 연구자 선정 등의 평가가 공정하게 진행됐고,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조사를 하고 있는 이효빈 대학연구윤리협의회 사무총장은 “국가 연구비가 투입된 만큼 가능한 범위 내에서 공정하게 조사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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