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권 잠룡, 트럼프·머스크 동시 겨냥
일론 머스크 “이건 미친 짓” 즉각 반발
개빈 뉴섬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 후 전기차 세액공제가 폐지되더라도 주 정부 차원의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전기차 보조금 등이 담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폐지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뉴섬 주지사가 선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뉴섬은 민주당 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할 몇 안 되는 인물로, 차기 민주당 대선 주자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2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뉴섬 주지사는 이날 성명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IRA에 따른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폐지할 경우 캘리포니아는 과거에 시행했던 친환경차 환급 제도를 다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친환경 교통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오염을 유발하지 않는 차량의 운전을 더 저렴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바이든 정부는 2022년 의회를 통과한 IRA에 근거해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5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IRA를 자신의 주요 성과로 홍보해왔는데, 로이터 통신은 지난 14일 트럼프 정권 인수팀은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세액공제를 폐지할 계획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전기차가 트럼프 당선인의 우선순위 표적이 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뉴섬 주지사가 선수를 친 셈이다.
진보 성향이 짙은 캘리포니아는 2010~2023년 무공해 자동차 구매자를 대상으로 환급 제도를 운용하며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를 지원하는 등 전기차 전환에 적극 행정을 펴왔다. 미국 전체 전기 자동차 중 37%는 캘리포니아에 등록된 것으로도 집계됐다. 이 제도를 다시 도입하려면 주 의회 동의가 필요하지만, 캘리포니아는 민주당 우세 지역인 만큼 어렵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뉴섬 주지사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연방정부와 소송 가능성에 대비해 내달 주 정부 소송 비용 증액을 논의할 특별 회기도 소집했다. 캘리포니아는 트럼프 집권 1기 때도 총기규제와 의료, 이민 문제 등을 두고 연방정부를 상대로 120회 이상 소송을 제기했다. 트럼프 당선인 정책 기조에 반대해온 뉴섬 주지사로선 체급을 키우며 민주당 차기 주자로 자리매김할 기회이기도 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뉴섬 주지사의 전기차 세액공제 지원에서 테슬라는 제외될 것으로 전망된다. 뉴섬 주지사 측은 (이번 지원 정책이) “더 많은 자동차 제조업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시장 조건을 만드는 것”이라며 세부 사항은 주 의회의 협의 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책 목표는 시장 혁신과 경쟁 촉진에 있는데, 테슬라는 이미 캘리포니아에서 상당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뉴섬 주지사의 이번 제안이 트럼프 당선인은 물론 그의 ‘실세’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까지 겨냥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머스크는 이날 캘리포니아의 발표에 즉각 반발했다. 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옛 트위터)에 테슬라는 캘리포니아에 생산 시설을 두고 있는 유일한 회사라고 강조하면서 “이것은 미친 짓”이라고 적었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테슬라 주가는 3.96% 하락 마감했다.
캘리포니아를 이끄는 뉴섬 주지사와 머스크 간 갈등은 수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앞서 머스크는 캘리포니아의 각종 진보적인 규제와 높은 물가 등을 비판하며 테슬라와 스페이스X, 엑스 본사를 텍사스로 이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민주당 대권 잠룡 뉴섬과 공화당 실세 머스크가 맞붙게 됐다”며 “트럼프 측근이 되어 정부효율부 수장 역할을 수락한 머스크와 충돌하면서 진보 진영 내 뉴섬의 입지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