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들기
이조경(1941∼)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에 늙을 것을
굴레를 풀려나와 허허(虛虛)한 듯 실실(實實)하네
내 주름 그대 백발도 노을 속에 고와라
-초대(동경)
삶의 훈장
홍콩의 액션 스타 홍금보는 말했다. “늙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고…. 위험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이가 들 수 있다는 것은 긴 세월 그 많은 위험들을 피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조경 시인은 남편이 일흔 살에 작고하자 슬픔에만 잠겨 있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 늘 미안해하던 남편이 자기에게 시간을 선물한 것으로 여기고 미국으로 가서 학창 시절 이후 손 놓았던 그림을 공부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홀로 보내야 하는 노년은 새롭게 시작하는 제2의 인생이었다.
흐린 눈 고마워라 다 정다워 보이네/화음으로 들리네 가는 귀 먹은 덕에/들국화 흐드러졌네 이 자리가 꽃자리-지금이 제일
나이가 들면 노안 등으로 시야가 흐려진다. 그런데 흐려진 눈으로 보니 다 정다워 보인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갑갑한 게 아니라 모든 소리들이 화음으로 들린다. 맞아보니 노년이 인생의 황금기였다.
이 시인은 아직 걸을만할 때 다녀야 한다며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그녀에게 지금은 삶이 주는 훈장이다.
유자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