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치(음치, 박치, 몸치)

2024-10-17

나에게는 세 가지 치가 있다. 음의 가락이나 높이 등을 분별하지 못하는 음치, 박자에 대한 감각이 무딘 박치, 춤이나 율동이 어설픈 몸치다. 이 때문에 노래방에 가는 것을 회피하고 나이트클럽에 가는 것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여기에 바둑, 화투 등 잡기에도 소질이 없는 편이다. 가족 모임이나 친구들 모임이 끝나면 2차로 으레 노래방을 가게 된다. 그때마다 애꿎은 술만 들이키게 된다. 강권에 못 이겨서 내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게 되면 잘 나가던 분위기에 찬물을 붙는 꼴이 된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의외로 많은 사람이 자신을 음치, 박치, 몸치로 생각하고 노래나 춤출 기회가 생기면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에게만 음치, 박치, 몸치가 있는 줄 알았는데 동물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우연히 모악산을 오르다가 숲속에 앉아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니 새에게도 음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헤엄이 서툰 물고기, 키가 자라지 않은 나무, 덜 예쁜 꽃, 빠른 거북이와 느린 토끼 등 세상 어디에나 다름과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물고기의 세계에서도 종족 보존을 위해서는 춤 솜씨가 필수라고 한다. 물고기는 사람과 달리 체외수정하기 때문에 암컷이 수중에 알을 남으면 수컷이 정자를 방출해서 수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수컷은 번식기가 되면 암초가 둘러싸여 외적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좋은자리를 선점하고 암컷에게 구애해야만 한다. 암컷은 수컷의 춤 솜씨와 좋은 자리를 보고 짝짓기를 허락하게 된 까닭이다.

산란기가 되면 수백 마리의 수컷물고기들의 군무는 가히 환상적인 무도장을 방불케 한다. 자손을 많이 낳기 위해서는 알을 낳는 타이밍과 정자를 방출하는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야 하는 이유다. 당연히 몸치인 물고기는 짝짓기도 못 하고 암컷의 관심 밖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몸치인 내가 물고기로 헤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요즘은 음치클리닉 학원과 인터넷강의에다가 출장까지도 생겨났다. 방송인 전현무도 가수 로이킴 덕분에 음치를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몸치 탈출 학원도 창업 러시를 이루고 있다. 음악만 나오면 몸이 굳고 심장이 쿵쿵 뛰는 나 같은 사람들에겐 희소식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몸치는 두 달만 학원에 다니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아다닌다고 입방아를 찧어댄다.

젊은 시절에 몸치 탈출을 위해 몇개월간 여자 춤 선생에게 춤을 배운 뒤 무도회장에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춤추는 일은 내 성격상 싫어서 그만두고 말았다. 음치를 탈출을 위해 노래방도 자주 다닌 덕분에 쉬운 노래로 서너곡은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이라서 시끄러운 라이트클럽이나 노래방은 체질상 맞지 않는다. 대신 술친구, 산 친구, 글 친구와 가까이하고 있다.

등산을 즐기는 나는 숲길을 자주 걸으면서 음치 새를 가끔 만나게 된다. 그런데 오히려 음치 새 소리 때문에 숲속의 음악은 더 다채롭고 화려해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숲은 크고 작은 나무, 그 나무들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어울려 살아있는 생명의 음악 소리로 가득 찬다. 그런데 풀벌레,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라디오를 크게 다니거나 고성방가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 보다 자연의 소리가 아름다운 것을 모르는 탓이다. 어쩌면 자연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그들이 진짜 음치, 박치, 몸치인지도 모른다.

김정길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회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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