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화성에서 물을 발견했다! 그런데 사실… 이제는 태양계에서 지구 바깥 다른 천체에서 물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정도는 그리 놀라운 소식처럼 들리지 않는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을 그냥 확인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놀라워해도 좋다. 화성 표면에서 물이 발견된 게 아니라, 화성 깊은 곳 지하 바다가 있을 거라는 발견이기 때문이다! 목성의 얼음 위성 유로파처럼 화성 내부에도 많은 양의 물이 채워진 지하 저수지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인류의 화성 진출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적지 않은 천문학자들의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최근 거론되는 화성 지하 거대 바다의 존재 가능성을 더불어 그동안 화성에서 물의 흔적을 찾고자 했던 천문학자들의 이야기를 훑어본다.
물의 존재 가능성은 화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주제다. 흥미롭게도 화성은 천문학자들이 다루던 첫 번째 순간부터 이미 물을 품고 있는 세계로 여겨졌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스키아파렐리가 화성을 관측하면서 쓴 ‘화성’이라는 책을 보고 영감을 받은 20세기 미국의 천문학자(겸 다이아수저 사업가) 퍼시벌 로웰은 화성 표면에서 일직선 모양의 운하가 아주 복잡하게 얽힌 흔적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것이 화성인들이 화성 극지방에 얼어 있는 하얀 얼음을 녹여 물이 부족한 적도 지방으로 끌어오기 위해 건설한 거대 구조물의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다소 허풍 섞인 로웰의 주장은 과학계뿐 아니라 대중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자연스럽게 화성에는 어떤 형태든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투영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화성인’이라는 표현 자체가 ‘외계인’ 전체를 대변하는 말로 사용될 정도였다.
하지만 탐사선과 궤도선이 화성 곁을 스쳐지나가는 플라이 바이 탐사가 시작된 후 로웰의 이야기가 단지 허풍이라는 슬픈 사실이 확인됐다. 탐사 로봇이 곁을 지나가면서 직접 본 화성 표면에는 인공 건축물의 흔적이나 녹음이 우거진 숲은커녕 물 한방울도 없었다. 화성은 붉은 색의 차갑고 메마른 황량한 사막 행성이었다. 그렇게 화성의 처참한 실체가 드러나자 자연스럽게 SF 작품 속 외계인들의 고향은 은근슬쩍 화성에서 태양계 바깥 먼 다른 별로 옮겨졌다.
하지만 로웰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외계인들의 화성 수자원공사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화성에 물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로웰의 억울함이 조금씩 풀리게 된 첫 계기는 1972년 매리너 9호가 화성 표면에서 흥미로운 지질학적 흔적을 발견하면서부터다.
무려 4000km에 달하는 매리너 계곡을 비롯해, 화성 곳곳에서 물이 흐르면서 파인 것으로 보이는 메마른 강줄기의 흔적을 발견했다. 1975년에 지구를 떠나 화성 표면에 착륙하는 데까지 성공한 바이킹 탐사선은 화성 표면의 흙을 로봇 삽으로 직접 퍼올려서 안에 탑재된 가스 크로마토그래피 질량 분석기로 토양 샘플을 분석했다. 모든 샘플에서 매번 물이 검출되었다. 다만 샘플을 취급하는 방법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고, 정확한 물의 함량을 알기는 어려웠다. 어쨌든 적어도 1% 이상의 물이 화성 토양과 암석에 함유되어 있다는 징후를 보여주었다.
특히 화성의 극지방도 지구의 남극과 북극처럼 추운 환경을 유지하면서 많은 물이 얼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2008년 피닉스 착륙선이 직접 화성 북극에 착륙했다. 그리고 아주 양이 막대한 물 얼음의 존재를 확인했다. 피닉스 착륙선은 로봇 팔 끝에 있는 굴착 장치로 화성 표면을 살짝 긁으면서 흔적을 남겼다. 그 중 아주 유명한 흔적이 있다. 두 줄의 작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표면 흙을 판 도랑에 NASA는 각각 도도와 골디락스 도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피닉스가 이 도랑을 촬영해 사진을 분석해보니, 처음에는 도랑 속에 밝고 하얀 물질이 존재했는데 4일 사이에 서서히 사라졌다. 이것은 물 얼음이 승화하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피닉스 착륙선이 화성 표면에 착륙하는 순간 찍은 셀카에 이상한 게 나와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착륙선의 금속 로봇 다리 표면에 작은 종기 같은 알갱이 여러 개가 나타난 것. 일부 천문학자들은 착륙 과정에서 염분기가 있는 가스를 분사했는데, 그로 인해 추운 밤 동안 화성 대기에 있던 수증기가 주변에 응결하면서 달라붙었고, 일종의 서리처럼 로봇 다리 표면에 물방울이 맺힌 것이라 추정했다.
2012년 NASA의 큐리오시티 로버가 드디어 과거 화성에 물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반박 불가능한 증거를 발견했다. 화성 표면에서 아주 매끄럽고 둥글게 침식된 자갈과 모래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다. 이건 개울가에서 볼 수 있는 몽돌과 비슷했다. 지금은 물이 메말랐지만, 분명 과거에는 물이 존재해 돌을 굴리면서 이리저리 깎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질학적 증거였다.
지구의 넓은 바다에 비하면 지금의 화성은 턱없이 물이 부족한 차가운 사막이지만, 적어도 수억 년 전에는 화성도 지구 못지않은 물의 세계, 심지어 생명의 보고였을 가능성이 진지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화성 구석구석에 아직까지 나름 물이 존재하고 있다면, 인류가 화성에 정착하는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많은 천문학자들이 화성 진출을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래전 화성의 자기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화성은 지구보다 1.5배 태양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태양에서 날아오는 태양풍은 여전히 위험하다. 안타깝게도 덩치가 작은 화성은 자체 자기장을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했다. 자기장은 태양풍으로부터 행성 스스로의 표면을 보호하는 선크림 비슷한 역할을 한다. 화성의 선크림은 금방 메말라버렸고, 그 아래 숨어 있던 대기와 바다도 빠르게 메말랐다.
자기장의 부재는 화성 표면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다만 한 가지 대안이 있다. 화성의 두꺼운 지각 자체를 태양풍의 위협을 막아주는 방공호로 삼아 아예 땅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천문학자들의 관심은 이제 화성 표면이 아니라 화성의 지하 세계로 향하기 시작했다.
화성은 어쩌다 자기장을 잃어버렸을까? 화성 표면 암석 일부에 남은 흔적을 보면 분명 처음부터 자기장이 없었던 건 아닌 듯하다. 한때 화성도 자기장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질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으면서 더 이상 강력한 자기장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해답을 알려면 화성의 땅 속, 내부를 봐야 한다. 물론 화성을 사과 자르듯이 반으로 갈라서 그 내부를 보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화성에 지진파가 퍼지는 양상을 조사하면, 화성 내부에 밀도가 다른 층들이 어떤 규모로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수박을 굳이 잘라보지 않고도 손가락으로 두드려 얼마나 잘 익었나를 판단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를 위해 천문학자들은 처음으로 화성에서 벌어지는 지진(Earthquake), 아니 화성진(Marsquake)을 감지하는 지진계 탐사를 위한 인사이트 미션을 진행했다. 2018년 11월 화성 표면에 착륙한 인사이트는 2022년 12월, 태양 전지판에 지나치게 두꺼운 화성 먼지가 쌓이면서 전력이 꺼지기 전까지 총 4년에 걸쳐 화성 표면에서 1300번에 달하는 땅의 울림을 감지했다. 물론 화성은 지질학적으로 죽은 행성이기 때문에 지구에서처럼 지각판이 부딪히는 방식으로 땅이 울리지는 않는다. 대신 가끔씩 화성 표면에 운석이 충돌할 때 진동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화성진이 발생한다.
천문학자들은 땅의 밀도, 내부 구조의 크기 등 여러 변수를 바꿔가면서 다양한 모델을 만들었다. 그 중에는 지하 물 저수지 변수도 있었다. 어떤 모델을 적용했을 때 실제 감지된 화성진 데이터를 가장 잘 재현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화성 표면 아래 10~20km 깊이에 물로 채워진 거대 저수지들이 존재한다고 가정한 모델이 실제 관측된 화성진 데이터를 거의 100% 가까운 확률로 가장 잘 설명했다.
얼핏 생각하면 시시한 발견으로 들릴지 모른다. 지구에서처럼 화성 표면에 있는 거대한 태평양을 발견한 것도 아니니까. 표면도 아니고 화성 지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물 저수지의 존재 가능성이 높다는 발견인데,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화성 표면이 아니라 지하이기 때문에 더 특별하다.
앞서 말했듯이 화성 표면은 자기장의 부재로 인해 위험한 태양풍에 그대로 노출된다. 애초에 지금까지 화성 표면에서 바다와 호수가 무사할 거라 기대할 수 없다. 설령 수억 년 전까지 화성 표면 바다와 호수에 낮은 수준으로 진화한 미생물 생태계가 존재했더라도, 그 흔적조차 수억 년에 걸친 태양풍 소나기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다 말끔히 살균됐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화성의 두꺼운 지각 자체가 태양풍을 막아주는 방어막 역할을 해서 그 속에 태양풍의 방해 없이 물, 심지어 생태계까지도 아직 남아 있을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올해 10월, 목성 곁을 맴도는 얼음 위성 유로파의 지하 바다 성분을 더 가까이서 확인하기 위해 유로파 클리퍼 탐사선이 지구를 떠난다. 두꺼운 얼음 아래 숨어 있는 바닷속에서 혹시 모를 외계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첫 발자국이 될 예정이다. 50년 전까지 화성은 태양계에서 외계 생명체의 흔적이 발견될 주인공으로 가장 유력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연이은 탐사에도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천문학자들은 서서히 유로파나 타이탄 같은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최근의 발견으로 다시 화성이 주목받고 있다. 화성과 유로파 중 어디에서 외계 생명체의 흔적을 먼저 발견하게 될까? 정말 태양계에서 외계 생명체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참고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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