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야구는 ‘구속 혁명’이 한창이다. 올 시즌 KBO리그에는 시속 155㎞ 넘는 공을 던진 투수가 10명이다. 한때는 시속 150㎞, 더 과거에는 시속 140㎞대 후반이면 강속구로 통했는데, 요즘은 그 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
올해 KBO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진 투수는 ‘160㎞의 사나이’ 문동주(22·한화 이글스)다. 공식 구속 측정 장비인 트랙맨 기준으로 올 시즌 시속 159.7㎞까지 던졌다. 문동주는 지난 2023년 4월 12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국내 투수 최초로 시속 160㎞가 넘는 강속구(160.1㎞)를 던졌다. 2위는 문동주의 후배인 한화 마무리 투수 김서현(21)이다. 최고 시속이 158.4㎞까지 나왔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구속 톱10 중 절반이 한화 소속이라는 점이다. 올해 전체 2순위 신인 정우주(19)가 시속 155.9㎞로 8위고, 외국인 원투펀치 라이언 와이스(시속 157.7㎞)와 코디 폰세(시속 157.1㎞)도 4, 5위에 나란히 자리했다.
20대 초중반 투수의 약진도 주목할 만하다. 정우주 외에도 톱10에 든 신인 투수가 2명 더 있다. LG 트윈스 김영우(20)와 삼성 라이온즈 배찬승(19)이다. 김영우는 최고 시속 156.9㎞, 배찬승은 155.8㎞를 기록해 각각 6, 9위다. 둘 다 올해 1라운드에 뽑혀 입단했다. 시속 156.3㎞로 8위에 오른 이강준(24·키움 히어로즈)은 10명 중 유일한 사이드암 투수다. 투수 출신인 최원호 해설위원은 “운동역학자들은 근력의 정점을 20대 중반으로 본다. 그 시기 이후에는 운동을 통해 관리하지 않으면 근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20대 초반 선수들은 (구속이 더 오를)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있다”고 설명했다.

‘강속구 군단’ 한화의 양상문 투수코치는 “과거에는 구속을 올리는 데만 집중하느라 무리한 폼으로 공을 던지는 선수가 많았다. 요즘은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신체적 조건이 예전보다 좋아진 데다, 운동 방법도 체계적으로 진화했다”며 “그 결과 빠른 공을 던지면서도 제구까지 잡힌 투수, 말하자면 ‘1군에서 경기가 되는 투수’가 많아졌다”고 평가했다.
투수에게 구속은 ‘재능’, 즉 타고나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꼽힌다. 타고난다는 말이 꼭 키나 체격 같은 신체 조건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빠른 공을 던지는 데 적합한 특유의 신체 능력을 뜻한다. 실제로 정우주와 배찬승은 키가 1m84㎝와 1m80㎝로 요즘 투수 치고는 큰 편이 아닌데도 놀라운 구속을 낸다.
류현진(한화 이글스)의 비시즌 훈련을 담당하는 54K스포츠 야구전문센터 김광수 코치는 “구속은 80%가 타고난 신체 능력에 달려 있다. 그 외에 좋은 지도자의 코칭이 10%, 적절한 웨이트트레이닝이 5%, 선수 개인의 잠재력과 노력이 5% 정도 작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많은 야구 전문가가 후천적 노력으로 늘릴 수 있는 구속을 시속 5㎞ 안팎으로 여기고 있다.
김 코치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선수 풀이 넓어야 천재형 유망주를 발견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최근 공 빠른 젊은 투수가 많아진 건,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이후 유망주가 대거 야구로 몰린 영향이 크다”고 진단했다.
강속구 투수의 조건을 하나로 축약하기는 어렵다. 장점이 제각각인 한화의 파이어볼러 삼총사가 좋은 예다. 문동주는 타고난 신체 능력에 유연한 투구 메커니즘이 더해진 경우다. 양 코치는 “문동주나 배찬승 같은 선수를 보면, 투구 폼이 정말 부드럽고 예쁘다. 예전의 강속구 투수보다 덜 와일드한 투구폼으로 더 빠른 공을 던지는 기술을 잘 습득했다”고 평가했다.
김서현은 전통적 관점에서 강속구를 던지기에 좋은 체격(1m88㎝, 93㎏)을 지녔다.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은 정우주는 파워를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는 능력이 일품이다. 양 코치는 “정우주는 공을 던지는 순간 힘을 하나로 모으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이는 훈련으로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일반인에게는 설명하기 힘든, 그야말로 타고난 능력”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