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는 골드러시 이후 급격한 인구 유입으로 혼란과 범죄가 난무했다. 정부는 무력했고 경찰마저 부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 ‘샌프란시스코 자경단’이다. 자경단은 법정과 교도소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며 살인과 강도, 부정부패를 직접 처리했다.
이런 역사가 최근 월가에서 다시 소환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발효 13시간 만에 ‘90일 유예’를 발표하며 물러선 배경으로는 채권 시장의 충격이 있다. 거침없는 트럼프의 폭주를 멈춘 것은 바로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경제학자 에드 야데니가 만든 이 용어는 정부의 반시장적 정책에 국채 매도로 맞서는 투자자들을 지칭한다.
채권 자경단의 힘은 이미 2022년 영국 리즈 트러스 총리 때도 드러난 적이 있다. 당시 트러스 총리는 450억 파운드 규모의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재정 안정 대책이 부족하다는 우려로 채권 시장에서 영국 국채가 대거 매도됐고, 금리는 급등했다. 결국 트러스 총리는 감세안을 철회하고, 취임 44일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정책이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시장은 가장 냉혹한 심판자로 돌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