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케이블 채널 MBC ON에서 재방송 중인 고전 드라마 MBC <사랑이 뭐길래>에선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결혼을 앞둔 사윗감이자 의사인 대발(최민수)에게 예비 장모인 심애(윤여정)가 최근의 신체적 변화에 대해 문의하자 “그거 갱년기 증세”라 거침없이 말하고, 이에 심애는 불쾌해한다. 갱년기가 여성만의 증세이자 폐경과 동의어로 여겨지던 시절, 여성에 대한 대발의 무례함과 갱년기를 여성 생애주기의 흠으로 여기는 당대 분위기를 보여주는 짧지만 강렬한 에피소드다. 얼마 전 한 보드게임 수입 및 번역 과정에서 벌어진 ‘폐경’과 ‘완경’이란 표현에 대한 논란을 보며 그 장면이 떠올랐다. 지난 11월 4일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 번역 출시한 보드게임 <메디컬 미스터리: 뉴욕 응급실>의 한 환자 카드에는 “완경기가 지난 53세 폴리네시아계 여성”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영어 menopause를 ‘폐경’이 아닌 ‘완경’으로 번역한 것에 대해 보드게임 커뮤니티 등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의 일부 남성 유저들은 ‘완경’이란 페미니즘 세력이 밀고 있는 불순한 표현이라며 용어 수정을 요청하거나 불매 운동을 벌였다. 엄지와 검지로 만든 집게손 이미지를 볼 때마다 페미니스트들의 음험한 표식이라며 불매 운동을 벌이던 남성들의 소비자 갑질이 그대로 재현되나 싶었지만 의외로 해당 회사에선 굽히지 않았다.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지난 12일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을 통해 “언어는 시대에 따라서 바뀌고 의학용어조차도 그렇다”며 “폐경을 겪은 당사자들은 상실감이나 좌절감 등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을 겪는다고 하는데, 완경이라는 표현은 삶의 단계 하나를 완료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이라고” 하기에 ‘완경’이란 표현을 바꾸지 않겠다고 밝혔다.
해당 회사의 매우 상식적인 대응과 함께 이번 ‘완경’ 논란은 다행히 말 그대로 해프닝으로 끝난 모양새다. 해당 입장문에서 잘 드러나듯, ‘폐경’ 대신 ‘완경’이란 표현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 여성을 위한 것이지만,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라 믿는 이들의 망상적 세계관과 달리 ‘완경’이란 단어는 남성을 비하하지도 남성의 권리를 침해하지도 않는다. 즉 페미니즘의 언어냐 아니냐는 것과 별개로 제로섬의 언어가 아니다. 여성의 몸에 대해 여성 당사자들 스스로 좀 더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만든 표현이 너무 불편하고 싫다면 그 감정의 기저에 여성혐오와 성차별주의가 있는 건 아닌지 따져보는 게 먼저일 것이다. 다만 성차별주의자 유저들의 유치한 반발과 별개로 좀 더 진지하게 다뤄볼 만한 입장도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동의 여부와 별개로, 이미 상당히 오래 광범위하게 사용된 중립적 언어를 굳이 특정 정치적 입장과 사상을 담은 언어로 대체하는 게 온당하냐는 것. 그들에 따르면 ‘폐경’의 ‘폐’는 ‘닫을 폐(閉)’이지 ‘폐할 폐(廢)’가 아닌 만큼 기존 단어가 딱히 여성의 월경 중단에 대해 비하적이거나 부정적 의미를 담지 않았음에도 ‘완경’이라는 신조어를 강요하는 건, 특정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 사회적 약속으로서의 언어를 경시하는 것이다. 적어도 페미니즘 묻었으니 불매하겠다는 강짜에 비해 훨씬 정련된 논리다. 문제는 이 논리가 실천적 차원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가치 중립적이기보다는 반동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의미론의 차원에서 ‘폐경’이란 말은 그저 여성의 월경 중단이라는 현상에 대한 건조한 사실 진술일 뿐이다. 다만 언어의 의미란 결국 그 사용에 있다. 많은 경우 ‘폐경’이란 말을 쓰는 이들도 특정한 악의를 담지 않으며 의료 현장을 비롯해 우리 생활의 여러 맥락에서 큰 문제나 불쾌감 없이 사용되지만, 또한 적지 않은 경우 비가역적인 상실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당대의 문장가로 꼽히는 김훈의 소설 <언니의 폐경>을 떠올려보라. 여성 독자들의 비웃음을 샀던 생리혈에 대한 묘사는 차치하더라도, 남편을 비행기 사고로 잃고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언니의 삶과 폐경의 진행이 겹치며 ‘폐경’은 건조한 사실 진술이 아닌 여성의 상실과 공허에 대한 상징적 의미로 사용된다. 김훈 스스로 인정했듯 여성을 인격체로 묘사하는데 서툰 남성 작가가 ‘폐경’을 이렇게 사용한 게 우연일까. 김태곤 감독이 연출한 2015년 개봉 영화 <굿바이 싱글>에선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40대 스타 배우 주연(김혜수)에게 의사가 “폐경이에요”라고 선고를 내리는 순간이 일종의 웃음 포인트로 사용된다. 의사는 그저 의료적 소견을 말했을지 모르지만, 작품 내에서는 ‘폐경’을 나이 든 여성의 어떤 좌절로 묘사하며 심지어 그것을 희화화한다. 이것을 건조한 사실 진술이라 할 수 있는가. 너무 예전 작품만 얘기하는 것 같다면, 11월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오리지널 시리즈 <Mr.플랑크톤>도 있다. 보육원에 버려졌던 재미(이유미)는 자신이 갖지 못했던 엄마가 되고 싶어 어흥(오정세)과 결혼하려다 조기 폐경 진단에 망연자실한다. 작품 자체는 불행처럼 보이는 것이 불행이 아닐 수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잘 전달한 편이지만, 어쨌든 젊어 겪는 ‘폐경’은 인생을 꼬아버리는 중차대한 사건으로 제시된다.
이처럼 ‘폐경’은 가치 중립적인 의학용어지만 ‘완경’은 특정 사상을 담아낸 편향된 단어라는 믿음과 달리, ‘폐경’이란 말 역시 여성 신체의 변화를 남성 중심적 사회의 맥락 안에서 특정한 편견을 담아 재현한다. ‘폐경’의 어원에 편견이 담겨 있어서가 아니라, ‘폐경’이란 말을 사용해 온 시간의 대부분이 그런 사회적 관점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을 투명하게 지시하는 언어란 순진한 허구다. ‘페경’이든 ‘완경’이든 ‘월경 중단’이든 무엇으로 부르든, 여성이 겪는 이 신체 변화는 대외적 삶과 육체적 경험의 맥락 안에서 결코 중립적이지 않은 사건의 의미를 담아 재현된다. 그래서 ‘폐경’이란 단어를 옹호한 이들도 한 가지는 옳은데, ‘폐경’이란 말 자체엔 죄가 없다. ‘완경’이란 표현을 쓴다고 갱년기의 체온 변화가 완만해지는 건 아니다. 단지 동일한 신체적 변화의 경험을 당사자들 스스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사회적으로도 여성성의 상실 따위가 아닌 한 인간의 생애주기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아내기엔, ‘폐경’이란 말이 그동안 너무 오염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뿐이다. 투명한 언어 대 오염된 언어가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편향된 언어 실천이 있으며 그중 어떤 실천을 지향하느냐는 정치적 결단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폐경’이란 말엔 죄가 없으며, ‘완경’이란 말을 대신 쓴다고 남성의 몸을 정상 신체로 전제하고 여성의 몸을 타자화한 우리의 언어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다. 그것 역시 뒤집힌 방식의 또 다른 순진한 언어관이다. 중요한 건 언어가 사용되는 지평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 변화의 출발이 꼭 ‘폐경’이란 단어를 버리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폐경’을 지켜야 한다는 일부의 고집만큼은 다분히 반동적이다. 그 반동과의 싸움에서만큼은 ‘완경’이란 표현을 응원할 수밖에.
<위근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