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찾아서 [조남대의 은퇴일기(63)]

2024-10-22

언제부터인가 내 얼굴에서 웃음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다 보니 웃음은 점점 나를 떠나가고, 빈자리에 무표정한 얼굴만이 남았다. 어느 날 크게 웃는 내 모습을 본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얼마나 오랜 시간 웃음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으면 그랬을까. 언제부터 웃음은 나에게 멀어지게 되었다. 나이 들어 감정의 탄력에 문제가 생겨서라고 어쭙잖은 핑계를 대어 본다.

어느 날 문우와 통화하는 것을 듣고 있던 아내가 “웬일로 그렇게 큰 소리로 웃느냐”며 의아해하는 눈치다. 여느 때처럼 대화한 것 같았는데 거실에 있던 아내 귀에는 다르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당신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네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 얼마나 즐거움을 표현하지 않았으면 이런 말을 듣나 싶었다. 아내는 종종 “당신은 왜 그렇게 근엄하냐”며 “가족한테조차 웃음이 인색한지 모르겠어”라고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나 스스로 그렇게 무뚝뚝하고 웃음이 부족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얼마 전에는 손주의 재롱을 보며 박장대소하는 나를 본 딸이 “아빠가 그렇게 환히 웃으시는 걸 처음 본다.”라며 놀랍다는 투로 말을 한 적이 있다. 천진난만한 손주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작은 행동 말 한마디에 마음이 따뜻해지며 웃음이 절로 새어 나오곤 한다. 하지만 자식 키웠던 젊은 시절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시대적인 분위기 탓도 있었겠지만, 육아에 대한 지식이 없던 때라 사소한 잘못에도 아이의 관점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딸과 사위가 손주들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차분히 설득하고 달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인내심이 깊어 보인다. 자녀 교육의 방식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뀐 것인지, 아니면 자식들이 그저 느긋한 성격이라 그런 것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호탕하게 웃는 사람을 볼 때마다 부럽다. 작은 일에도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보면 ‘어쩌면 저렇게 스스럼없이 웃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여성들이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가식적으로 웃는 것도 아닌데 ‘까르르 깔깔’ 터져 나오는 경쾌한 소리에 옆에 있는 나 또한 기분이 좋아 어깨가 들썩인다. 결혼 후 싹싹한 아내와 든든하고 쾌활한 아들, 애교 많고 사랑스러운 딸을 키우며 웃는 일이 많아지긴 했지만, 내겐 친숙하지 않다. 좋아도 좋다는 말을 선뜻하지 못하는 무덤덤한 성격 탓에, 그저 씽긋 웃는 것이 내 감정의 최대치인 양 느껴진다.

아버지를 닮아서인가. 여덟 형제를 키우신 자상한 아버지셨다. 자라면서 크게 꾸중 들어본 기억은 없으나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 역시 생각나질 않는다. 여러 자식을 키우면서 기쁜 일도 많았을 텐데 늘 무표정 속에 계셨던 것 같다. 아마도 경상도 종갓집 종손으로서 삶의 무게가 웃음마저 잠식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돌아보면 그 시절에 딸 하나 없이 많은 아들을 키우며 공부시킨 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조차 쉽지 않다. 화를 내시는 분은 아니셨지만 속으로 삭이시는 일이 많았던 듯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탓에 나 또한 웃음에 인색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었을까. 명절에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도 잠시 안부를 나눈 후에는 서로 눈치만 보며 멀뚱히 앉아 있다가 어색함에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내 삶 속에 웃음이 자리할 곳은 늘 부족했다. 천성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소리 내어 웃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그 습성이 지금까지 몸에 배어 있는 듯하다.

웃음은 신이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한 최고의 선물이자 가장 값진 보약이라고 한다. 어린아이는 작은 자극에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하루 삼사백 회나 되지만 성장하면서 횟수가 점점 줄어들어 어른이 되면 하루에 다섯 번도 쉽지 않다고 한다. 탈무드에는 생명체 중에서 인간만이 웃을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현명한 사람일수록 잦다고 전한다. 웃음은 단순히 감정의 표현을 넘어서 뇌에서 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행복 호르몬’을 분비시켜 마음을 밝히고 정신건강도 좋다. 엔도르핀을 분비하여 통증을 줄이기도 한다. 활짝 웃는 표정은 면역세포의 활동을 촉진하여 질병에 대한 저항력까지 높인다고 하니 그야말로 신체와 마음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인 셈이다.

웃음은 그 어떤 값진 대가 없이도 삶을 풍요롭게 한다. 간디는 ”웃음은 가장 저렴한 사치품이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라며 웃음이 불러오는 긍정적인 변화를 강조했다. 특히 박장대소는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심리적 해방감과 신체적 에너지를 한꺼번에 분출시키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온몸으로 터뜨리는 웃음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순간이다. 자식 키우며 직장에서 책임을 짊어진 채 살다 보니 웃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돈이 들거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 아님에도 잊고 산 것이다. 이제는 손주들을 보살피며 잘 웃는 할아버지로, 아버지로, 남편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라도 거울을 보며 입꼬리 올리는 연습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신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임에도 살아가면서 놓아버린다. 하지만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마치 잃어버린 열쇠처럼, 찾으려 마음먹기만 하면 언제든 되찾을 수 있다. 손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잃고 지냈던 웃음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고 있다.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하듯, 내 마음에도 삶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다시금 웃음의 빛을 찾고 싶다. 글을 쓰며 웃음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이 과정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값진 여정이 아닐까.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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