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큼 복 많은 노인네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2025-03-25

송해씨는 96세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했다. 세계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대한민국 최고령 철학자인 김형석 교수는 105세인 지금까지도 집필과 강연을 계속하고 있다. 이 두 분은 고령에도 활기차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낸 대표적인 인물이다.

우리 주변에도 새로운 배움에 도전하며 삶의 만족을 찾는 어르신들이 있다. 지난해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88세 최고령 만학도 김갑녀 할머니는 목욕탕에서 일하며 홀로 다섯 딸을 키워냈고 80세에 한글학교에 다니며 한글을 깨쳤다. 글을 배운 후 어머니께 쓴 편지에서 김 할머니는 “고생 끝에 복이 온다 하더니 정말 그런 날이 왔네요”라고 적으며 삶에 대한 만족을 표현했다.

또 다른 사례로, 87세에 대학 입학의 꿈을 이룬 김금자 할머니도 있다. 한국전쟁 때 부모를 잃고 생계를 위해 배움을 포기했던 김 할머니는 80대 중반에 초등학교·중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결국 소원이라던 대학 입학에 성공해 늦깎이 신입생이 된 김 할머니는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 옛날에는 깜깜했던 세상이 지금은 환하게 보이는 것 같다”고 전하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물론 모든 노인이 이런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노년기에는 흔히 세 가지 고통인 ‘삼고(三苦)’가 따라온다고 한다. 외로움,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 문제다. 그래서 ‘노년에도 활기차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때로는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삶의 의미와 만족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나이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웃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학문적으로 말하는 ‘성공적인 노화’의 조건에는 여러 요소가 있다. 학자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조금씩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적인 요소로는 신체적·정신적 질병과 장애의 최소화, 인지적·신체적 기능 유지, 그리고 사회적 관계의 유지다. 이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건강해야 사회 속에서 활동할 수 있고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뇌도 건강해진다.

무병장수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유병장수(有病長壽)’의 시대인 요즘에는 어디가 아프더라도 삶의 질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해졌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이자 책 <행복의 조건>의 저자인 조지 베일런트는 성공적인 노화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며, 단순히 건강한 신체 상태를 넘어 주관적 행복감과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통한 균형 잡힌 삶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미국 스탠퍼드대 로라 카르스텐슨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남은 시간을 의식하게 되면서 보다 의미 있는 관계에 집중하게 되고, 이를 통해 만족감을 극대화한다고 했다. 결국 노년기 만족감의 열쇠는 ‘누구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

돌아보면 필자의 할머니도 그랬다. “부부가 백년해로하지, 자식들 다 효자효부지, 다들 밥술 먹고 살지. 나만큼 복 많은 노인네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96세를 일기로 최근 생을 마감하신 할머니는 생전에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말은 지금까지의 삶이 충분히 좋았고 본인 삶에 만족한다는 뜻이었다. 비록 허리가 아파 몸은 불편했지만, 자식·손주들과의 따뜻한 관계가 그 삶을 든든하게 지탱해주었다.

우리 모두가 ‘105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처럼 될 수는 없지만, 나만의 리듬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는 있다. 매일 걷는 길에 작은 변화를 주고, 오랫동안 미뤘던 사람에게 전화 한 통을 걸고, 스스로를 위한 소소한 목표를 세워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노년의 삶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언젠가 삶을 되돌아보며 우리도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기를. “이만하면 잘 살았지. 나만큼 복 많은 노인네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