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의 홈구장인 수원KT위즈파크에는 9회가 되면 종소리가 울린다.
팀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마무리 투수 박영현이 마운드에 오르면 팬들이 환호성으로 맞이한다. 박영현이 나왔다는 건, KT가 이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박영현은 6월까지 리그에서 가장 많은 세이브를 올린 투수다. 39경기에서 22개의 세이브를 올렸다. 롯데 김원중(21세이브), KIA 정해영과 한화 김서현(20세이브) 등이 근소한 차이로 뒤쫓고 있지만 이들을 제치고 박영현은 가장 높은 곳에 있다.
2022년 입단해 지난해부터 마무리 투수라는 보직을 맡은 박영현은 66경기를 뛰며 25개의 세이브를 쌓았다. 올시즌에는 전반기를 마치기도 전에 지난 시즌 동안 기록한 세이브 개수에 가까워지고 있다. 2023년 32홀드로 데뷔 처음으로 타이틀을 차지한 박영현은 이번에는 구원왕을 따낼 가능성이 높다.
박영현은 “지난해보다는 좀 더 나은 올해를 보내려고 준비를 잘 한 게 잘 맞아떨어졌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지난해 한 시즌 동안 경험을 해봤지만 나가면 나갈수록 마무리라는 보직의 무게감이 적지 않다. 그는 “한 시즌 해보니까 책임감이 많아졌다”라고 돌이켜봤다.
그럼에도 박영현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 있는 덕분에 무게감을 이겨낼 수 있다. 그는 “투수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인 마무리 투수를 맡았으니 자부심은 배가 된다. 박영현은 “그래도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다라는게 뿌듯한 보직인 것 같다. 잘 막으면 좋은 기억으로 남고, 못 막으면 나에게 경험이 된다라는 생각으로 나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강심장을 가지고 있는 박영현이지만 그도 흔들릴 때가 있었다. 지난 달 12일 수원 롯데전에서 연장 10회초 상대 주자 장두성을 견제하려다가 주자가 옆구리에 공을 맞는 일이 벌어졌다. 장두성은 피가 섞인 구토 증세를 보였고 박영현 역시 적지 않게 놀랐다. 평정심을 잃은 박영현은 10회에만 5실점했고 팀은 패배했다. 박영현의 올시즌 한 경기 최다 실점이었다.
박영현은 “당시에는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 있었고 두성이 형에게 미안한 감정이 너무 커서 경기에 집중 못했다. 그래서 팀이 중요한 상황인데도 무너졌다. 그동안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오게 되더라”고 돌이켜봤다.
장두성에게 직접 연락해 사과를 한 박영현은 “그 뒤로도 계속 그 상황이 생각나더라. 두성이 형에게 연락도 드렸고 ‘괜찮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나도 내 모습을 계속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KIA전에서 등판한 박영현은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다시 제 모습을 찾았다. 그리고 세이브 개수를 다시 쌓아나갔다.
박영현은 자신의 세이브가 단순히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KT는 불펜 투수가 좋은 팀 중 하나다. 불펜 평균자책이 3.51로 SSG(3.37)에 이어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이다.
박영현은 “중간 투수 형들이 잘 막아주고 있기 때문에 내가 세이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타자 형들도 잘 쳐주니까 나에게 기회가 온다고 생각한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세이브왕에 대한 욕심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에 앞서 박영현이 이루고 싶은 게 있다. 올시즌을 시작하기 전, 생각했던 목표 그대로다. 그는 “아직은 시즌 중반이라서 구원왕에 대한 생각을 하기보다는 지난해보다 더 나은 올해를 생각하고 있다”며 마음을 다졌다. 일단 지난해보다 한층 더 성숙한 박영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