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에너빌리티가 체코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5조 6000억 원 규모의 원자로·터빈 등 기자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앞서 한국수력원자력을 주축으로 한 ‘팀 코리아’가 약 16년 만에 이룬 해외 원전 수주 쾌거가 실질적인 공급계약으로 순조롭게 이어지면서 K원전의 유럽 시장 진출이 본격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한수원과 체코 두코바니 1000㎿(메가와트)급 원전 5·6기에 원자로, 증기 발생기 등 주기기와 터빈·발전기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16일 공시했다. 계약 금액은 총 5조 6000억 원으로 이 가운데 원자로와 증기 발생기 등 주기기 공급이 약 4조 9000억 원을, 터빈·발전기 공급이 약 7000억 원을 각각 차지한다. 이는 지난해 두산에너빌리티 매출의 35% 수준이다.

이번 계약은 앞서 한수원과 두산에너빌리티·한전기술·대우건설·한전원자력연료·한전KPS 등으로 구성된 ‘팀 코리아’가 성사시킨 체코 신규 원전 본계약의 후속 차원으로 이뤄졌다. 체코 신규 원전 사업의 본계약은 6월 발주사인 체코전력공사(CEZ)의 자회사인 EDU II과 한수원 간 체결됐다. 당시 한수원이 설계·조달·시공(EPC) 주관사로서 이후 두산에너빌리티와 개별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구조로 이뤄졌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코바니 원전 5·6기 건설 기간인 2027년 11월부터 2032년 8월까지 기자재들을 제작 및 공급할 예정이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한수원과 두산에너빌리티 간 후속 협력 계약 차원”이라며 “계약 기간 및 금액은 진행 과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번 수주를 통해 유럽 시장 교두보를 확고히 하는 한편 확실한 캐시카우를 확보하게 됐다. 주기기 제작 등이 본격화되면 회사 측은 수년간 안정적인 매출과 영업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올해 수주 목표도 이번 계약으로 가뿐하게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올해 수주 목표액인 10조 원대를 훌쩍 뛰어넘어 연간 수주액 약 14조 원 달성이 유력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체코 원전 기자재 수주를 기점으로 두산에너빌리티가 ‘글로벌 원전 르네상스’의 최대 수혜주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체코 원전은 유럽 규제 기준을 통과한 레퍼런스가 돼 현재 논의 중인 유럽 내 신규 원전 프로젝트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있는 소형모듈원전(SMR) 사업과의 시너지도 기대된다.

팀 코리아가 약 16년 만에 이뤄낸 해외 원전 수출은 계약 체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한수원은 당초 5월 EDU II와 본 계약을 체결하려 했지만 경쟁사인 프랑스전력공사(EDF)의 가처분 신청이 계약식 하루 전날 받아들여지면서 계약이 무산된 바 있다. 다만 이후 체코 최고행정법원이 “(지방법원의) 가처분 결정은 위법하며 부분적으로 검토 불가능하다”며 가처분 결정을 취소하면서 계약의 물꼬가 트였다.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를 건설하는 이번 프로젝트의 예상 사업비는 약 26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코 신규 원전 사업 관련 수주가 국내 업체들의 기자재 공급계약으로까지 이어지면서 향후 원전 업계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에 한국형 원전이 들어선 것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의 약 27조 원 규모 바라카 원전 수주가 마지막이다. 이번 체코 사업에서는 주기기 공급과 시공을 맡은 두산에너빌리티를 비롯해 한전기술은 설계를, 한전원자력연료는 핵연료 공급을, 한전KPS는 시운전과 정비를 맡는다. 아울러 다수의 협력사가 두코바니 원전 건설에 참여한다.
K원전의 다음 스텝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체코 자회사인 두산스코다파워는 9월 CEZ와 현지 최대 규모인 테멜린 원전 1·2호기에 3000억 원 규모 발전기 2기를 공급하는 계약을 추가로 체결했다. 해당 계약은 최근 테멜린 원전의 기존 발전기에 대한 교체 수요가 발생한 데 따른 것으로 발전기 공급과 함께 15년간 유지·보수 작업을 두산에너빌리티가 맡을 예정이다.

두산스코다파워가 두코바니에 이어 테멜린 원전의 발전기를 수주하면서 한국이 향후 현지에서 추진될 원전 증설 사업의 핵심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관측에도 힘이 실린다. 체코 정부가 공식화한 신규 원전 발주 계획에 따르면 두코바니 원전 5·6호기에 이어 테멜린 원전 3·4호기 증설 역시 추진될 예정이다. 지난해 양국 간 협의에 따라 체코 정부가 향후 5년 내 테멜린 원전 추가 증설을 결정할 경우 우선협상권이 있는 팀 코리아가 계약을 따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글로벌 원전 시장 규모는 향후 천문학적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전 세계 원전 시장 규모는 2035년까지 약 163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경우 2050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을 현재의 4배로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