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도착하지 않은 편지

2025-03-13

차를 타고 3월로 이동 중이다, 사월아. 나는 느리니까 사흘 일찍 출발했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보다 더 늦게 넌 이 편지를 읽게 된다. 느린 자들은 가장 먼저 움직이는 자들이기도 하다.

어디로 움직이고 있니. 어제 나는 노래를 몇 곡 부르고 빨래하고 버섯을 씻고 말렸다. <고상하고 천박하게>가 출간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요즘 시대의 책이란 게 그렇잖아. 너무 빨리 낡잖아. 몇 해 동안 쓴 원고가 출간 몇 주 만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울어진 세숫대야에 담긴 시간처럼 금세 잃어버린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인쇄가 들어갈 즈음 알게 됐다. 앞으로 나의 편지는 어딘가 달라지겠구나.

어떤 편지는 너라는 수신인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가닿을 예정이다. 우리가 모르는 여러 편의 후속작이 도착할 거다. 파편적으로 이 책은 늘어날 거다. 구름이 길어지고 이름이 늘어나고 눈길이 불어나듯이.

어떤 시절에는 아무것도 심지 못했다. 무엇도 자라지 않았다. 죽은 나무처럼 몇 해를 지났다. 버티는 것만이 유일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한 시절이 통째로 날 비껴갔다.

그러다 어느 날 부탁하지 않은 무언가를 타인들이 건넸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덥석 건네받았다. 그리고 같은 날, 그 사실을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받은 일부를 쥐여주었다. 내 안에 세워둔 막이 차차 얇아졌다. 지금 돌이켜보니 알겠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편지가 오간다. 마음이든 말이든 크고 작은 서신은 전하는 순간 두 사람의 것이 된다. 정신 차려 보면 다음날로 이동해 있다. 타의가 나를 살렸다. 내 안에 타자가 쌓여서 내일로, 내일모레로 건너갔다. 어느새 다음 시절이다. 내가 몰랐던 미래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행인들도 전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몇 통씩 품고 산다. 아직 발신되지 않은 편지들을. 우리는 잠재적 우편함이다. 한 장이 동시다발적인 답장을 촉발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말을 고르며 살아갈까. 얼마나 많은 백지를 채우게 될까.

양말과 속옷, 티셔츠를 가지런히 다 갰다. 벌써 3월이 훌쩍 지났다.

너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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