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복판에 빼빼로가 떴다. 이달 11일 ‘빼빼로데이’를 앞두고 롯데웰푸드의 광고캠페인이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거리의 전광판에 송출됐다. 글로벌 시장 소비자들을 겨냥하여 미국인은 물론 세계 각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장소에서 빼빼로의 옥외 광고를 과감하게 전개한 것이다. 이것은 빼빼로 ‘데이마케팅’의 일환이다.
‘데이(기념일)’를 붙인 날들은 부지기수다. 달력의 특별한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 다양한 이름의 데이가 넘쳐난다. 많은 ‘데이’가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그리고 ‘블랙데이’는 이미 모든 국민이 다 알 정도가 됐다. 데이는 기업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거나 민간에서 자연스레 발생한 특별한 기념일이다. 어떤 경우든 기업은 그 특별한 날인 데이를 마케팅 기회로 삼는다.
그런데 업계의 데이마케팅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시각은 두 가지로 극명하게 나뉜다. 먼저 자연스러운 대중문화로 보는 긍정적 견해다. 데이가 무미건조한 삶에 재미와 유익을 주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것이다. 그와는 달리 업계의 지나친 ‘상술’이 소비문화를 오도한다는 반대 주장도 나온다. 전자는 데이 문화가 가족이나 친구들과 정을 나누며, 사랑과 베풂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본다. 한편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데이마케팅이 과소비를 조장하고, 잘못된 상술로 고유한 전통 기념일마저도 퇴색시킨다고 주장한다. 데이로 이름붙여진 기념일은 단지 상술에 불과하므로 소비자가 이에 휘둘리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데이마케팅에 부정적 견해를 펼치는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상술’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상술을 ‘장사하는 재주나 꾀’로 정의한다. 부정적 의미가 들어갈 여지가 전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상술이란 단어에서 좋은 뜻보다는 무의식적으로 나쁜 어감을 느낀다. 그래서 상술이란 단어 앞에는 늘 ‘얄팍한’, ‘과도한’, ‘지나친’, ‘미끼’ 등 부정적 수식어를 붙여 쓴다. ‘좋은’, ‘멋진’, ‘놀라운’, ‘아름다운’ 등의 긍정적 의미의 형용사가 붙는 경우는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장사의 기술인 상술이 왜 나쁜가. 그리고 상술이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지나친 마케팅으로 한몫 잡으려는 기업들의 잘못된 상행위 때문이다. 데이마케팅에서도 과대포장을 비롯한 온갖 판촉 방법이 동원돼 상품의 가격을 크게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소비자의 과시욕을 부추기거나 기념일과는 무관한 상품까지 구매를 유도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이것은 굳이 데이마케팅이 아니더라도 비난받아야 할 잘못된 상술이다. 두 번째는 사농공상의 양반문화에서 찾을 수 있겠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장사를 천시하거나 비하하는 풍토가 존재한다. 하지만 장사를 자랑으로 여기는 중국, 유대, 일본 등에서는 상술에 관한 숱한 지혜와 규범이 전해 내려온다. 우리에게 그런 자료는 희귀하다. 다만 장사를 힘들게 꾸려갔던 보부상들의 아련한 이야기만 들릴 뿐이다.
이제 데이마케팅은 문화적 현상이다. 따라서 마케터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가치는 물론이고, 특히 소비자의 태도와 삶의 방식인 문화를 제대로 읽어내고 적합한 마케팅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속임수라거나 잘못된 상술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는다. 사회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에밀 뒤르켐은 문화를 “규범과 역할을 확립하기 위해 집단이 사용하는 상징, 신념, 가치체계”라고 정의했다. 이처럼 사회는 모두 사람에 관한 것이며, 문화는 사람을 지배하는 운영체계다. 그러므로 사람을 더 잘 알고, 문화를 제대로 이해해야 데이마케팅이 성공한다.
같은 날을 기념하는 데이 행사도 여럿 있다.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와 동시에 ‘가래떡데이’다. ‘농업인의 날’과 함께 우리 먹거리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날이다.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우리가곡의 날’도 11월 11일이다. 우리 고장에서의 이날은 ‘대구시 출산장려의 날’이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이날은 ‘둘(11)이 만나 둘(11) 이상의 자녀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자’라는 의미다. 모두 의미가 큰 공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1977년부터 데이마케팅을 본격적으로 펼쳐온 빼빼로데이는 가장 성공한 사례다. 이제 롯데웰푸드는 빼빼로를 ‘연 매출 1조 원’의 세계적 메가브랜드로 키울 꿈을 글로벌 마케팅으로 실현하려고 한다. 해외 판매채널을 늘리고 다양한 프로모션과 캠페인도 전개한다. 올해 글로벌 캠페인의 슬로건은 ‘빼빼로로 사랑을 나누세요’다. 빼빼로의 핵심 브랜드가치인 ‘나눔’을 강조한다. 빼빼로가 한류 문화의 큰 물결을 타고 성공하는 ‘상술’을 펼쳐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나눔의 브랜드가 되기를 기대한다.
세밑이 다가온다. 12월의 ‘머플러데이’ 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정과 사랑을 나누는 그런 기념일은 많을수록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