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 음악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제19회 쇼팽 콩쿠르가 지난달 23일 폐막했다. 미국의 에릭 루가 1위를 차지했고, 캐나다의 케빈 첸이 2위, 중국의 지통 왕이 3위에 올랐다. 공동 4위는 중국의 텐야오 뤼와 일본의 구와하라 시오리였다. 입상자 다섯 명 중 네 명이 중국계, 한 명이 일본계다. 아시아 피아니스트들의 강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접한 연주 중 단연 인상적이었던 피아니스트는 텐야오 뤼(17)였다. 폴란드 포즈난의 파데레프스키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이다. 자연스러운 서정성과 감수성의 표현이 귀에 쏙 들어왔다. 상위 입상자로 점쳐졌던 뤼는 공동 4위뿐 아니라 협주곡상도 받았다.
기억에 오래 남을 한 장면을 꼽는다면 나카가와 유메카(24)의 연주였다. 나카가와는 2021년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 우승자다. 김선욱이 2005년 우승했던 대회다.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한 나카가와는 2차 예선에서 24개의 전주곡 전곡을 연주했다.

쇼팽 전주곡은 스물네 곡 각각의 느낌이 천차만별이다. 경쾌하면서 목가적이고 정열적이며 과격한 한편, 유쾌하고도 절망적이다. 쇼팽의 다양한 표정이 남김없이 드러나는 곡이다. 나카가와는 이러한 표정을 살리며 스물네 곡을 한 곡 한 곡 연주해갔다. 전주곡 15번, 이른바 ‘빗방울 전주곡’을 칠 때 중반 이후 나카가와의 안경 너머로 눈물이 비쳤다. 감정이 북받친 표정이었지만 나머지 전주곡들을 차질 없이 이어갔다.
‘빗방울 전주곡’을 쓸 당시 쇼팽은 연인 조르주 상드와 마요르카섬에서 지냈다. 하루는 상드가 아들과 함께 외출했다.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곧 폭우로 변했다. 연인을 걱정하며 기다리던 쇼팽의 가슴 속에서는 눈물로 변한 비가 내렸다. 다행히도 상드와 아들은 몇 시간 늦게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쇼팽은 걱정과 사랑의 느낌을 고스란히 곡으로 적어냈다. 나카가와는 이야기 속을 추체험하며 쳤던 것일까. 연주하며 일그러진 표정을 보이는 피아니스트는 많았지만 눈물까지 흘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카가와는 난곡으로 유명한 전주곡 16번에서 속주를 이어가며 흐름을 이어나갔다.
3라운드에 오르지 못한 그녀의 성적은 나중에 발표된 채점표에 의하면 28위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현장과 인터넷으로 지켜본 청중들은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선물 받았다. 영상의 댓글창에는 “이렇게 마음에 드는 전주곡은 처음이다” “기록보다 기억에 남는 연주다” “이게 음악의 힘인가, 눈물이 난다” “나는 뜨겁게 살고 있을까,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해줬다” “마음을 움직이는 희귀한 음악가” 등 63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앞으로 쇼팽 ‘빗방울 전주곡’을 들을 때마다 눈물 흘리며 아름다운 연주를 이어간 어느 피아니스트가 떠오를 것 같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