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학 교육이 너무 부실해 연구개발(R&D)이 어렵습니다. 행렬·벡터를 이해 못 하는데 인공지능(AI)이건 반도체건 어떻게 새로운 걸 만듭니까.”
얼마 전 만난 전직 삼성전자 기술 임원의 탄식이다. 지난 22일 “일반 국민까지 모두 AI 실력을 갖춘다면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는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일성에, 새삼 그의 ‘수학 탄식’이 떠올랐다.

구 부총리는 이날 AI로 저성장을 극복하겠다는 내용의 ‘새 정부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하며 “모든 국민이 AI를 쉽게 배우고 활용하는 ‘AI 한글화’를 이루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산업 현장의 고민은 ‘수학’이다. 예컨대, 중국 딥시크에 대해 서울대 공대의 한 교수는 “이건 수학의 힘”이라고 했다. 딥시크는 AI 추론의 행렬-벡터(GEMV) 곱셈을 행렬-행렬(GEMM) 곱셈으로 바꾸고 값을 압축하면서도 정확도는 유지해, 오픈AI보다 성능을 높였다. 이산수학·선형대수의 영역이다. 베이징대 2015학번 뤄푸리가 핵심 개발자였다고 한다.
한국에선, 2017학번부터 대학생 대다수가 고교에서 행렬을 안 배웠다. ‘학습 부담이 과도하다’며 일반고 필수 과정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공대 수업 진행이 안 된다’는 아우성이 빗발치자, 11년이 지난 올해 고1(2028학번)부터 다시 행렬의 기초 이론을 가르친다.
‘전 국민 수학 교육’도 누구에게 얼마나 할 건지는 합의하기 어렵다. 이 와중에 부총리는 ‘전 국민 AI 교육’을 선포했다. 초중고생에 EBS AI 강의를, 군인·대학생·구직자에는 AI 직무교육을 하겠다고 한다. 실행안은 문재인·윤석열 정부 때와 비슷하다. ‘소프트웨어(SW) 아카데미’ 대신 ‘AI 아카데미’ 식으로, SW·디지털이 있던 자리에 ‘AI’를 넣었다.
현장에서는 초급 개발자 과잉공급을 우려한다. 팬데믹 시기에 국비로 개발자 교육을 확대한 결과 SW 초급 개발자가 대거 양성됐다. 그러나 요즘, 생성 AI의 코딩 기능이 그 초급 일자리를 쓰나미처럼 덮치고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정부가 단기 교 육 중심의 개발 인력 확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살아남을 실력’은 어디에서 올까.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다른 자리에서 같은 표현을 썼다. “우리는 컴퓨팅의 모든 스택(stack·계층)을 재설계했다.”(젠슨 황) “기본으로 돌아가 기술 스택을 바닥부터 위까지 다시 생각했다.”(사티아 나델라) 혁신은 제 본업의 구조를 속속들이 알고 재구성하는 힘에서 출발한다는 거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전국민에게 끼얹어 성장률을 높일 ‘마법의 물약 AI’를 찾기보다, 한글을 한글답게 수학을 수학답게 익히고 구사하는 기본을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