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범 5년차를 맞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정부의 검찰개혁 기조에 맞춰 그간 검찰이 독점하고 있었던 일부 권한을 가져오기 위해 공격적으로 수사체계 개편에 나서고 있다. 경찰은 검찰 전속고발 규정, 기관 통보 등에 관한 경·검 차등 규정 등을 개정해 경찰도 중요 수사단서 및 정보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5일 경찰 수사 신뢰성 제고를 목표로 하는 ‘수사역량 강화 종합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수사와 관련한 검찰의 독점권을 깨려는 정부의 개혁 기조에 맞춰 제도 개선을 통한 권한 확보 및 경찰 수사 역량 강화와 관련한 방침을 담고 있다.
경찰은 검찰의 전속고발 규정 등 법·제도 개선을 통해 경찰 수사 권한 확대를 추진한다. 일례로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검찰에게만 고발이 가능한 중대불법거래 사건을 경찰도 수사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거친 뒤 검찰에 고발, 사건을 넘겨주는 방식인데 이를 경찰도 수사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경찰은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을 추진해 검찰과 경찰에 차등 제공되던 금융정보도 동등하게 제공받을 방침이다.
스토킹·가정폭력 등 피해자를 신속하기 보호하기 위해 임시·잠정조치 등 청구 주체에 사법경찰관도 포함시킬 예정이다. 현재는 경찰이 임시·잠정조치를 신청하면 검찰이 법원에 청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현장에서의 위급성과 심각성 등을 경찰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직접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것이다. 잠정조치 중 위치추적 장치 부착, 유치장 유치 등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경찰 수사 종결 단계에서의 책임성·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 서울변호사회에서 주관해 실시하고 있는 사법경찰관 평가를 각 지역 변호사회와 협업하여 전국 단위로 확대 추진한다. 시민참여 기구인 경찰수사 심의위원회 외부위원의 인력풀을 확대해 시민이 경찰 수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능도 마련한다.
경찰에서 자체 수집한 범죄첩보에 대해 정식으로 ‘입건 전 조사’에 착수할 경우 관서장 승인을 받도록 하는 경찰청 훈령을 개정한다. 피의자가 아닌 사건관계인에 대한 원격화상 조사 제도 도입, 영상녹화·진술녹음 시스템 마련, 변호인 조력권 보장 등도 추진한다.
보이스피싱 등 대형·중요 사건, 사회적 이목 집중 사건 등에 대해서는 수사 경험이 풍부한 시·도경찰청 수사부서에 전담 수사체제를 확충하겠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사안에 따라 총경·경정급도 실 수사업무에 투입하는 한편, 서울·경기남부경찰청에만 설치된 광역수사단을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는 것도 추진한다.
또한, 모든 팀장을 대상으로 반기별로 다면 평가를 하는 등 과·팀장에 대한 역량평가를 강화하고 신임수사관 교육 기간을 단계별로 6개월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정원을 추가 확보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수사역량 강화를 위한 인력과 예산도 확충한다. AI 시대를 맞아 첨단 기술을 수사에 접목하는 등 과학수사 인프라를 우선적으로 확보할 예정이다. 일례로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수사지원시스템(KICS-AI)도 도입해 수사관들에게 수사 쟁점과 관련 판례 등을 제공하고, 영장신청서 등 각종 수사서류의 초안까지 자동 생성해 반복적인 업무를 줄여 업무 효율성을 강화한다.가상자산·다크웹 추적·분석 시스템을 고도화해 신종범죄에 대한 대응 역량도 확보할 계획이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마약 등 범죄는 예방부터 검거까지 전 단계에 걸쳐 총력 대응할 계획이며 전세 사기에 대해서도 특별단속 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산업재해와 관련해서도 수사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에 전담수사팀을 설치하는 것과 함께 재난·안전사고 분야의 경력 채용을 확대하고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공단 등 관계기관과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경찰청 중심으로 책임수사체제 구축 등 대공수사 완결성을 높이고, 해외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집중단속도 병행해 국가 산업 자산의 해외 유출을 사전 차단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국수본은 출범 5주년을 맞아 검경 수사권 조정 이전 수준으로 사건처리 기간을 회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7년 44일이었던 사건처리기간은 국수본 출범 2년차인 2022년 67.7일까지 늘어났다. 이후 적응기를 거친 경찰은 사건처리기간을 올해 6월 기준 55.2일까지 단축했다. 장기사건 비율이나 검사의 요구 및 요청 비율도 개선됐다.
수사부서 기피 현상에 대해서도 경정·팀 특진 도입, 경찰 자체 인력 재배치 등 지속해 여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최근에는 수사경력자의 수사부서 이탈 현상도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수사경력도 늘어나는 추세다. 수사관의 평균 수사경력은 2022년 상반기 7.4년에서 2025년 상반기 8.5년으로 비교적 증가했다.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번 로드맵을 계기로 수사의 전 과정을 재정비하고 역량을 한층 높여 국민에게 신뢰받는 수사기관으로 거듭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