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가격 1년 새 50% 올라…인공수분 필수 신고배 ‘타격’
생산 원가 인상으로 출고가 인상 불가피…‘배 대란’ 올 수도
“수입 꽃가루 없이는 농사 못 지어요. 폭등에 폭등이라도 사는 수밖에 없죠.”
경북 상주시 외서면의 석영우씨(54)가 5일 오전 배나무 가지를 정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10년 전 경기 김포에서 이곳으로 귀농했다. 그는 지난해 열매가 터지는 열과 피해로 큰 손실을 본 데 이어 올해 배 농사에 필수적인 꽃가루 가격이 폭등해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석씨는 “매년 오르던 꽃가루값이 이제는 만원 단위로 오르고 있다”며 “일손을 구하기 힘들어 인건비까지 크게 오른 상황이라 언제까지 배 농사를 이어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입 꽃가루 가격이 폭등하면서 배 과수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배 대부분은 수입 꽃가루 인공수분을 한다.
상주농업기술센터 등에 따르면 올해 중국산 꽃가루 가격은 20g들이 한 봉지당 6만원이다. 지난해 같은 양의 가격은 4만원으로 1년 사이 가격이 50%나 급등했다.
올해 유독 꽃가루 가격 오름폭이 크다. 최근 몇년 동안은 연 5000원가량씩 올랐다. 가격 급등은 지난해 중국의 배 작황이 부진했던 탓이다. 중국의 배 생산량이 크게 줄면서 꽃가루를 만드는 배꽃의 채집량 자체가 줄었다.
꽃가루 가격이 폭등하면서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저장성이 좋아 국내 배 재배면적의 80%를 차지하는 신고배는 꽃이 피어도 수술에 꽃가루가 없어 자가수분이 불가능한 품종이다. 과거에는 꿀벌 같은 곤충이 다른 품종 배꽃 수술에서 꽃가루를 날라 자연수분을 도왔지만, 최근 이상기후로 인해 곤충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인공수분 의존도가 100%에 가깝다.
석씨는 “몇년 전 꿀벌 실종으로 난리가 난 이후 꿀벌 보기가 힘들어졌다”며 “배꽃이 필 때 100마리 넘게 보이던 꿀벌이 요즘엔 10마리도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산둥성, 허난성 등에서 발생한 과수화상병은 농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꽃가루 수입이 아예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수화상병은 사과나 배나무의 꽃과 잎이 화상을 입은 듯 검게 말라 죽는 세균성 검역병이다. 전염성이 강하고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감염되면 과수원 나무 전체를 뿌리째 뽑아 땅에 묻어야 한다. 지난해 일본은 꽃가루를 통한 과수화상병 유입 차단을 위해 중국산 꽃가루 수입을 전면 중단하기도 했다.
농가에서 꽃가루를 직접 채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꽃가루 생산량이 많지도 않은 데다 채집을 위한 인건비가 별도로 들어 경제성이 떨어진다. 배꽃은 통상 4월 초에 피는데, 보름 안에 꽃 채집과 인공수분을 모두 끝내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배의 생산원가에 해당하는 꽃가루값이 오를수록 배 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다. 지난해의 사과 대란처럼 올해 배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아예 인공수분이 필요 없는 다른 품종의 배를 재배하자니 저장성에 문제가 생기고, 초기 투자비용도 많이 든다.
석씨는 “농가 입장에서는 신고배가 판매 기간이 길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는 만큼 다른 품종으로 교체하는 것도 힘들다”며 “장기적으로는 다른 배 품종을 심을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