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유통업계 전반에 들이닥친 혹한기를 돌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는 올해 10월 말 이마트와의 계열 분리를 공식화하며 본업 경쟁력 강화에 본격 돌입할 채비를 마쳤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신세계, 이마트 간 계열 분리 작업은 유통업계 불황 속 확실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전제돼 있을 것"이라며 "불황 속에서도 올해 신세계가 선방한 만큼, 내년도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긍정적 결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정 회장의 남다른 리더십이 업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 회장은 최근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식사 회동을 갖는 등 내년 자사의 도약을 위해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16일부터 21일 오전까지 트럼프 당선인의 자택이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 머무르며 미국 측 차기 주요 정부 인사들과 접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정 회장은 해당 리조트에 머물며 트럼프 당선인과 식사를 함께했고, 여러 주제를 놓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밝힌 바 있다.
당장 업계에서는 이러한 정 회장의 행보를 두고 긍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신세계의 한 경쟁업체 관계자는 "경쟁사의 수장이기는 하지만, 이번 정 회장의 행보는 한국 유통업계에 있어서는 조금이나마 트럼프 시대에 불안을 덜 수 있는 희소식"이라며 "일련의 사태로 정부의 외교적 역할이 사실상 부재한 상태에서 업계의 가교 역할의 선두에 섰다는 점에서 호평하고 싶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이번 정 회장의 미국 방문은 전형적인 '정용진식 리더십'의 표본"이라며 "전통적인 재계 리더들과 달리 개인의 사적 친분 관계를 총동원해 자사의 성장을 위해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 회장은 이번 회동뿐만 아니라, 신세계가 보유하고 있던 난제를 극복하는 데 적극적으로 역할해 왔다는 점에서 그룹 수장으로서의 자질을 점차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세계와 CJ그룹의 물류 협업과 SSG닷컴의 재무적 투자자(FI) 매수청구권(풋옵션) 행사 갈등 해소 등이 꼽힌다.
먼저 정 회장은 CJ와의 협업에서 결정적인 가교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업계에서 전해지고 있다.
그간 정 회장은 신세계의 물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해 왔다. 이 고민의 결과는 올해 중순 체결한 'CJ-신세계 사업제휴 합의서 체결식'으로 귀결되었고, 양사는 온·오프라인 유통 및 물류, 콘텐츠 등에서 다양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이 협약에 따라 G마켓 등 신세계의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 등은 CJ대한통운의 물류 인프라를 활용해 익일배송 서비스 '스타배송'을 론칭하기도 했다.
G마켓과 SSG닷컴은 CJ대한통운의 배송 인프라를 활용해 운영 효율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 자사 물류(1PL)의 제3자 물류(3PL) 전환을 본격 확대해 물류 운영 원가를 상당 부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세계 측은 앞으로도 다양한 방면에서 CJ와의 협업을 확장해 온·오프라인 본업 경쟁력 강화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정 회장은 신세계의 발목을 붙잡던 SSG닷컴의 재무적 투자자(FI) 풋옵션 행사 갈등을 해소하는 데 선봉에 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의 주도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BRV캐피탈매니지먼트가 보유했던 SSG닷컴 보통주 131만6천492주(30%) 매매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신세계는 이마트와 SSG닷컴의 신규 FI '올림푸스제일차(SPC)'와 주주 간 계약을 맺는데도 성공했다.
올림푸스제일차는 KDB산업은행, 신한은행, NH투자증권 등 은행권 6곳과 증권사 4곳이 참여한 특수목적법인으로, 기존 FI가 보유한 SSG닷컴 지분 30%(보통주 131만6492주)를 양수하게 된다. 계약 금액은 1조1천500억원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신규 FI로 SSG닷컴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이에 기반해 신세계, G마켓 등과의 협업으로 지속되는 적자를 더 빠르게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정 회장은 이마트의 오프라인 본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 5월 이뤄진 정 회장의 '이마트 연수점' 방문이다. 연수점은 이마트 매장 비율을 절반까지 줄이는 대신 테넌트(임대매장)를 늘렸다는 점이 특징이다. 식품 매장을 이색적인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채운 몰타입의 미래형 이마트 표본 매장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신세계 측은 설명한다.
정 회장은 특히 직접 채소를 재배해서 파는 스마트팜과 야구장 라커룸을 본뜬 테마광장,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트램폴린 파크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연수점은 리뉴얼 개장한 올해 3월 30일부터 4월 30일까지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8%가량 증가했으며, 방문 고객 수는 23% 증가했다.
정 회장(당시 부회장)은 "이번 리뉴얼은 큰 실험으로 매장 면적을 절반 이상 줄이면서 고객들이 더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선사했다"며 "이로 인해 매출이 많이 줄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리뉴얼 개장 후 추이를 보니 줄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의 예상이 적중했다"며 성과를 자신하기도 했다.
정 회장의 온·오프라인 본업 경쟁력 강화 기조에 따라 이마트는 이달 '그로서리 하드 디스카운트 스토어' 1호점인 '이마트 푸드마켓 성수점'을 선보이기도 했다.
온·오프라인 유통시장에서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식료품을 핵심 품목으로 낙점하고 가격 혁신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정 회장과 이마트의 야심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마트 푸드마켓 수성점의 전체 영업면적은 3천966㎡(약 1천200평)이다. 이 중 테넌트와 행사장을 제외한 직영 면적의 86%, 2천829㎡(약 856평)를 그로서리 상품으로만 채운 것이 특징이다.
독일의 할인 슈퍼마켓 체인인 알디(Aldi) 등 글로벌 하드 디스카운트 스토어(HDS) 소매업체가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중심으로 초저가 시장을 선도하는 상황에서 이마트 푸드마켓은 신선식품을 특화 모델로 차별화했다. 상품 가격은 할인점보다 20%~50% 저렴하게 운영한다.
한편 전문가들은 정 회장이 그간의 다양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리더십을 입증하는 데 진척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유통업계에 정통한 한 주요 경제단체 전문가는 "정 회장은 초기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의 활동으로 소비자에게 친근함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지만, 그만큼 불필요한 언행으로 다양한 논란을 촉발하기도 했다"며 "이로 인해 당시에는 정 회장이 신세계의 리더로서 적절한지에 대한 우려가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특히 올해 이러한 우려를 종식시키는 것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본다"며 "특히 미국 차기 정부와의 가교 역할을 자처한 만큼 내년 정 회장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학계 인사는 "정 회장의 독특한 리더십을 두고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구심을 제기했다"며 "그러나 정 회장 스스로도 이와 같은 시선을 불식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성과로 입증했다는 점은 평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신세계와 이마트의 계열 분리가 공식화된 상황에서 그룹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갈등과 혼란을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지도 내년 주시해야 할 지점"이라고 부연했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