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먹이다 남은 해열제, 처방받아 복용하고 남은 약들. 어떻게 버려야 할지 몰라서 혹은 약국에 갖다주기 귀찮아서 고민했던 경험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폐의약품은 나날이 늘고 있는데 문제는 약국이나 우체국 등에 수거된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이 일반 쓰레기나 하수구로 버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4대강 130곳에서 고혈압약, 당뇨약, 진통제 등이 광범위하게 발견됐다. 특히 마약류나 항생제, 피임약들은 식수오염이나 슈퍼박테리아로 인한 항생제 내성을 발생시키고 생태계를 교란시켜 국민건강을 위협한다.
폐의약품을 줄이기 위해서 선진국에서는 의약품 사용에 대한 교육이나 캠페인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결국 환자가 자신이 복용하는 약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약을 빼먹지 않고 꾸준히 복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처방약이 아닌 상비약은 어떤 방식의 접근이 필요할까?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상비약은 대부분 유통기한이 1~2년 사이다. 유통기한이 늘어날수록 소비될 확률이 높아진다. 약의 함량이 시간이 지나도 유지될 수 있도록 생산하는 기술력이 해결 방안의 핵심이다.
유통기한을 늘리는 기술은 그동안 경제성 측면에서 조금 더 나은 것 정도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은 더욱 늘어가고 있고 소비자들의 지갑도 지속가능한 제품이나 경영을 하는 기업을 향해 더 쉽게 열리고 있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기술이 해석되는 의미가 더 넓어진 것이다.
폐의약품 외에도 기존에는 재활용이 불가했던 약 포장을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만드는 방법도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적용되기 위해서는 포장 재질의 안정성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가 구비돼야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변경, 생산라인의 변화 등도 뒤따라야 하기에 비용과 시간이 적지 않게 들어간다. 결국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어 제약사 입장에서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의약품 사용량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보험 재정이 제대로 버틸 수 있을지 우려가 많은 상황에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약이 생긴다면 재정 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까지 발생된다. 코로나 펜데믹 시기를 지나며 상비약들이 생활 속에 가까워져 있는 요즘, 기술로 소비자들의 눈높이와 기업의 사회적 의미를 일깨우는 경영이 더욱 절실해보인다. 뜨거운 여름을 나고 혹독한 겨울을 기다리며, 아이들에게 물려줄 자연이 조금은 더 깨끗하고 안전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재정적으로도 든든해지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