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달 미국이 카타르에 약속한 방위 약속과 유사한 형태의 방위조약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우디 정부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다음 달 백악관을 방문할 때 협정이 체결되길 희망하고 있다. 조약은 군사 및 정보 협력 강화를 포함한 포괄적이고 '강력한' 방위 체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왕세자가 방문할 때 무언가에 서명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세부 사항은 아직 유동적"이라고 밝혔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거래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언급을 거부했다. 다만 국무부는 "미국과 사우디 간 방위 협력은 우리 지역 전략의 강력한 초석"이라며, "워싱턴은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 사우디와 협력해 분쟁을 해결하고, 통합을 촉진하며, 테러리스트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우디 대사관은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방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카타르에 대한 모든 공격을 외교·경제·필요시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법적이고 적절한 대응으로 간주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지 몇 주 만에 이루어진다.
내용은 흡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집단방위 의무를 명시한 조약 5조와 같지만 나토 조약은 미국 의회의 비준이 필요하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반면, 행정명령은 대통령 권한에 따른 것이어서 다음 행정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은 아니다.
이 행정명령은 지난달 이스라엘이 도하의 하마스 정치 지도자들을 겨냥한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뒤 발표됐다. 이번 공격은 워싱턴을 안보 보증자로 여겨 온 산유국들에 충격을 안겼다.
사우디는 오랫동안 미국과의 방위조약을 원해 왔으며, 이전 바이든 행정부 시절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병행한 방위조약 체결을 추진했으나,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과 이후 가자전쟁으로 교착 상태에 빠졌다.
가자전쟁 이후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며 비난했고,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되지 않는 한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현재 사우디는 트럼프 행정부와 단독 방위협정을 체결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카타르 처럼 백악관 행정명령에 그치거나 양국 간 합의서 형식이 될 수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유라시아 그룹의 중동·북아프리카 담당 총괄 피라스 막사드는 "카타르에 대한 행정명령 이후 유사한 방위·안보 분야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이번 협정은 기존 체계보다 훨씬 강력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함마드 왕세자가 1조 달러 규모의 국내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만큼, 미국과의 안보협력 강화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 및 그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이번 방문은 2018년 이후 처음이다.
사우디는 이미 미국산 무기의 최대 구매국 중 하나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5월 중동 순방 당시 1,420억 달러 규모의 사우디 무기 거래를 발표했다.
이는 사우디의 2024년 국방 예산의 두 배에 해당하며, 백악관은 이를 "역사상 최대의 방위 계약"이라고 설명했다. 계약에는 공군 및 우주 역량, 미사일 방어, 해상 및 국경 안보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사우디를 포함한 걸프 국가들은 지난 15년간 미국의 중동 개입 의지와 불확실한 정책 방향에 대해 점점 우려를 키워왔다.
실제로 2019년 트럼프의 첫 임기 당시, 이란이 배후로 지목된 공격이 사우디 석유 시설을 강타해 하루 산유량의 절반이 마비됐는데도, 미국은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카타르 공습으로 걸프 지역 전체를 불안하게 했다.
카타르는 또한 6월 이란과 이스라엘의 12일 전쟁 당시 트럼프의 이란 핵시설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이 미군 기지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되기도 했다.
사우디는 지난달 17일 핵보유국 파키스탄과 '전략적 상호방위 조약'을 체결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에 자국이 안보 동맹 다변화에 나섰다는 신호를 보냈다.
막사드는 "그건 명확한 메시지였다"며, "미국의 안보 체계에 대안은 없지만, 보완할 방식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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