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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캐나다 정부는 최대 12척의 재래식 잠수함을 도입한다는 ‘캐나다 초계 잠수함 계획(CPSP)’을 발표했다. 최대 20조원짜리 사업이다. 도입 후 30년 간 유지·보수·운영(MRO) 비용까지 합하면 규모가 40조~60조원으로 불어난다. 우리가 따내면 단군 이래 최대 방위산업 수출이 된다.
캐나다 해군이 제일 앞세운 조건은 극지 작전능력이다. 캐나다가 신형 잠수함을 주로 내보낼 바다는 바로 위 북극해다. CPSP는 원래 러시아와 중국에 맞서 북극권을 방어하려는 목적에서 기안됐다. 캐나다가 원하는 잠수함은 유사시 북극의 얼음을 뚫고 긴급 부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배수량이 최소 3000t이어야 한다. 전 세계에서 3000t급 재래식 잠수함을 갖춘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캐나다 20조원 규모 12척 도입
일본은 입찰 포기 독일 급부상
방산 수출 정치적 영향력 중요
국내 두 업체 갈등도 해소돼야
독 경쟁사 정부·군이 전폭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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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본은 지난해 입찰을 포기했다. 자국 잠수함 주문량을 간신히 소화할 역량이라 수출이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K잠수함의 캐나다 수출 항로에 암초가 나타났다. 경쟁자인 독일 방산업체인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즈(tkMS)가 독일 정부와 군 당국의 엄청난 지원 사격을 받으면서다.
독일이 주도해 지난해 7월 독일·캐나다·노르웨이 3국 정상 간 해양안보 파트너십이 체결됐다. 독일 정부 장관들은 요즘 CPSP와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캐나다 부처 장관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독일과 캐나다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 사이인데, 독일 해군이 캐나다 해군을 만나면 자국 잠수함 자랑을 한참 한다. 독일은 계약만 한다면 자국 해군보다 캐나다 해군에 먼저 잠수함을 인도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캐나다와 생명공학·기후변화·청정에너지 분야 공동 연구를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산업기술혜택(ITB)의 포석이다. 캐나다는 캐나다에 무기를 파는 국가가 반대급부로 캐나다에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ITB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tkMS도 캐나다 수주를 대비해 생산 능력을 늘리고 있다.
이처럼 독일 기업·정부·군의 삼각편대가 한국을 무섭게 쫓아오고 있다. 그러면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지난해 12월 3일 비상 계엄령 사태 이후 총력 수주전을 지휘할 사령탑이 안 보이게 됐다.
방산 수출은 기본적으로 G(정부) to G(정부) 사업이다. 무기 거래에 정치적 영향력이 중요하며, 차관 제공이 때때로 필요하다. 훈련과 운용에서 수출국의 군 당국의 지원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정상급 외교에서 방산 수출의 가닥이 잡히는 경우가 많고, 장관급 대화에서 세부적 내용이 결정되는 게 관례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대행’과 국방부 장관 직무대리 체제다. 독일보다 불리한 형국이다.
게다가 국내의 양대 조선업체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CPSP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두 회사는 서로를 잘 안다. 그래서인지 캐나다 관계자에게 상대 회사의 흉을 본다는 얘기도 들린다. 자칫 죽 쒀서 개 주는 결론이 날 수 있다.
캐나다가 2028년 CPSP의 사업자를 최종 선정하면 다 끝난 게 아니다. 폴란드와 필리핀도 잠수함 도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스라엘 매체인 이스라엘 디펜스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도 잠수함을 찾고 있다. 다 합하면 적게 잡아도 100조원이 넘는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지금과 같이 정부가 손을 놓고, 기업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면 100조원 시장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 된다.
K방산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진 분야가 K군함이다. 독일·프랑스가 선점한 세계 해양방산 시장에 K군함이 막 명함을 내밀고 있다. 그래서 CPSP가 중요하다.
CPSP로 발판을 다진 뒤 K군함은 미국 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다. 배를 찍어내는 중국 해군의 도전을 뿌리치려면 한국의 도움이 절실한 게 미국의 현실이다.
캐나다 거쳐 미국 시장 두드려야
미 의회는 자국 건조의 원칙을 접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법안 초안에 따르면 미 해군이나 해양경비대는 동맹국의 조선소에만 발주할 수 있다. 미국 동맹국 중 한국만이 캐파(생산 능력)가 여유 있으며,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고, 납기를 철저히 준수할 수 있다. 똑같은 이지스 구축함을 짓는데, 한국은 미국보다 기간은 3분의 1이 짧고 가격은 절반이다.
한국 조선업계는 요즘 ‘수퍼 사이클’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3년 치 일감이 쌓였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업은 선박 교체 주기에 맞춰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K군함이 앞으로 3~5년 바짝 뛴다면 한국 조선업계는 조선 경기의 보릿고개도 두렵지 않게 된다.
다행히 뒤늦게나마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원팀(One Team)’을 꾸리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 4일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이 연 토론회에서 주원호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대표는 “협력 관계를 잘 이뤄서 준비를 차근차근해가야 한다. 원팀이 반드시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어성철 한화오션 특수선사업부장(사장)도 “서로의 이익을 양보하는 게 굉장히 어렵지만 잘 극복해서, 시장을 잃어버리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만간 방위사업청의 중재로 두 회사가 수출에서 협력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맺을 계획이다. 원칙에 합의했다 하더라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법적으로 해결할 문제도 많지만, ‘화학적 결합’이 더 시급하다. 양사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놓고 싸우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어선 안 된다. 기업 원팀과 ‘팀 코리아(Team Korea)’란 한 배를 타야만 한다. 대행과 직무대리가 직접 뛰고, 다른 부처 장관들이 힘을 합하며, 국회도 동참해야 한다. 전 국가적 노력을 해도 CPSP의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