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1급 ‘황새’가 제 발로 찾아왔다

2025-05-10

국내 황새, 멸종 후 수입해 복원

‘멸종위기종 1급’ 귀한 손님, 동물원에 찾아왔다

산속에 자리한 동물원이라 야생동물들이 종종 찾아오곤 한다. 수달사 옆 소나무에는 오후 4시경 왜가리가 앉아 있다. 수달에게 먹이로 넣어준 미꾸라지를 훔쳐 먹어보려는 것인데 아직 방문객이 많아 내려오기 부담스러운 눈치다.

오전 10시 즈음 두루미사를 지나간다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그 시간 두루미사 앞에는 어김없이 야생 백로가 찾아와 뭔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사육사가 두루미에게 줄 물고기를 양동이로 가져와 수조에 부어주면 두루미들은 부리 끝으로 물고기를 잡아올려 하늘로 고개를 쳐들어 목 안으로 삼킨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다 싶으면 부리로 물고기를 잡아 철망으로 다가선다.

철망 앞에는 기다리다 목이 길어진 백로가 서 있다. 철망 사이 부리에서 부리로 물고기가 전달되거나 여의치 않으면 두루미가 철망 밖으로 물고기를 던져준다. 두루미는 나그네 백로에게 왜 먹이를 줄까? 두루미가 자신의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행동이 본능적으로 강할 때 나타나는 ‘부모 행동의 일반화(Parental care overflow)’ 행위로 추측된다.

월동을 위해 경남까지 날아갔던 독수리들이 봄이 되자 다시 고향 몽골로 돌아갔다. 동물원 상공을 선회비행하는 독수리 한 마리가 보인다. 대부분의 독수리가 이른 봄 몽골로 올라갔는데 4월이 돼서야 홀로 늦장 복귀를 하다 동물원에 있는 동료들을 발견하고 같이 갈 의향을 묻고 있는 듯하다. 동물원에는 구조된 3마리의 독수리가 살고 있다. 부리가 삐뚤어져 아사 직전에 발견된 하나와 왼쪽 날개를 영구히 못 쓰게 된 경남이, 어디선가 구조됐으나 사설동물원에서 전시동물로 살았던 하늘이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새인 독수리는 몇백m 상공을 날기에 까마귀 크기로 보인다. 늘 멀리 있는 독수리의 크기는 실감하지 못하지만 황새는 다르다. 지난달 황새 3마리가 동물원 물새장 주변을 날고 있었다. 이들의 관계를 지켜보니 2마리는 한 쌍이고 한 마리는 암컷을 차지해보려는 수컷으로 보였다. 바로 눈앞에서 희고 큰 새 2마리가 경쟁하며 평행하게 나는 모습은 그들의 속내와는 다르게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2m 날개로 바람을 받아 글라이딩하는 황새는 배경이 되는 봄날의 숲을 아웃포커싱한다.

며칠이 지나 주차장 쪽에서 “우와~ 새다!” 하는 방문객의 탄성이 들렸다. 뛰어가보니 황새가 동물원을 지나쳐 어디론가를 향해 날고 있었다. 책상에 늘 있는 쌍안경을 들고 나가 황새가 내려앉을 만한 곳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황새는 산 중턱에 있는 전봇대 위에 앉아 있었고 높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암수가 번갈아가며 오르고 내렸다. 전봇대 위에 집을 짓게 되면 황새도 위험하고 화재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아무래도 대체 둥지를 만들어줘서 유도해야 전봇대에 집을 짓지 않을 것 같았다. 대체 둥지 후보지는 황새들이 관심을 보였던 동물원 황새장 꼭대기였다. 애초에 그곳에도 둥지를 지으려 했으나 면적이 손바닥만 해 물어다 놓은 나뭇가지가 밑으로 계속 떨어졌다. 황새 야생방사 사업을 하는 예산황새공원 연구자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고 다음날 야생 황새의 번식을 위해 만들어놓았던 인공 둥지를 보내왔다.

황새장 꼭대기 둥지 완성 “어서와, 반가워!”

10여m나 되는 황새장 꼭대기는 황새가 좋아할 만한 높이였지만 직접 올라가보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먼저 밧줄로 인공 둥지를 끌어 올려 꼭대기에 얹고 황새장 프레임에 철사로 묶어 고정하였다. 황새를 유인하고,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나뭇가지도 한 묶음 둥지 안에 펴놓았다. 다음날 출장을 가 있는 동안 우리 팀 대화방에 달아준 둥지에 앉아 있는 황새 사진이 올라왔다. 영상도 전송받았는데 나뭇가지도 물어다 놓고 있었다. 일단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황새가 왜 동물원에 왔을까? 우선 지나는 길에 동물원 새장에 있는 친구 황새들을 보았을 것이다. 또 몇주 동안 이곳에 머물 수 있는 것은 멀지 않은 곳에 먹이터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마지막 황새가 살았던 곳은 충북 음성이다. 홀로 남은 암컷 황새는 1971년 밀렵꾼 총에 맞아 죽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더는 황새를 볼 수 없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1996년 충북 청주에 있는 한국교원대에서 황새 복원을 위해 러시아 황새 2마리를 도입하였다. 2000년대 야생동물의학 대학원 재학 중 지도교수님을 따라 교원대를 방문해 황새를 진료한 적이 있었고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현재 황새를 복원하는 곳은 한국교원대와 예산황새공원이다. 모두 상주 수의사가 없어 청주동물원 수의사들이 건강검진과 진료를 하고 있다. 명절 연휴 근무를 마치고 어머니가 사시는 충남 당진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예산황새공원의 연구자가 황새의 외상을 알려왔다. 어머니와의 저녁 약속이 있어 살짝 고민됐지만 예산으로 차를 돌렸다. 번식기 투쟁의 결과로 등에 외상이 광범위하게 생겼으며 수일은 된 듯 보였다. 갑작스러운 방문 진료로 마취제 등이 준비되지 않아 난감했다. 그래도 황새공원 내 진료실을 뒤적이니 수술 도구와 소독약이 있었다. 수술 도구를 멸균할 수는 없었지만 소독약에 담가 급한 대로 수술을 감행했다. 염증 부위를 제거하고, 피부에 관을 삽입해 이후 세척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황새는 발성을 내지 못하고 부리를 부딪쳐 소통하는 새다. 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마취 상태로 처치하는 중 황새의 신음이 느껴졌다. 황새공원 사육사들에게 세척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다시 당진으로 향했다.

황새공원에서 며칠 간격으로 황새의 환부 사진을 보내주었다. 환부의 색으로 봐선 더 이상 염증은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됐다. 그곳 사육사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세척한 결과였다. 얼마 후 다른 황새가 호흡기 질병으로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해서 방사선 발생 장치를 차에 싣고 방문했다. 방사선 사진을 본 영상수의사가 폐렴을 의심했고 내과수의사가 혈액검사로 확진하여 처방약을 지어 보냈다. 한 달쯤 지나 황새 연구자가 2마리 황새 모두 건강해졌다는 소식을 장문의 문자로 보내왔다. 황새 복원에 일조한 것 같아 보람됐다.

동물원 인공 둥지에 앉은 수컷은 예산황새공원에서 방사한 개체고 암컷은 야생에서 태어난 개체라고 한다. 수컷은 방사 전 GPS를 달아 위치추적이 가능하다. 업데이트된 위치신호를 분석해봐야겠지만 휴일 방문객이 많은 날은 낮보다는 한산해진 아침과 저녁에 오간다. 알을 낳기 전까지는 둥지가 확정된 것이 아니다.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새는 낳은 알을 끝까지 책임진다. 몇년 전 남극 펭귄을 연구하러 갔을 때 기록 장치들을 펭귄의 등에 달아야 했다.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펭귄을 포획해야 했는데 알을 품고 있는 펭귄은 절대 도망가는 법이 없어 손쉽게 잡을 수 있었다. 장치를 달고 나간 펭귄은 크릴새우를 마음껏 먹으며 자유롭게 바다를 헤엄치다가 2주 후 알 품기 교대를 위해 나타났다. 불과 얼마 전 사로잡혔던 공포가 선명할 터인데 알이 기다리는 둥지로 분명히 돌아왔고 장치 회수를 위해 다시 포획됐다.

마지막 황새가 살았던 음성은 미호강 상류 지역이다. 상위 포식자 황새는 어류뿐 아니라 파충류, 양서류도 먹고 산다. 황새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다양한 생물이 산다는 증거다. 미호강이 흐르는 청주의 동물원에 멸종위기종 1급 황새가 돌아온 것은 역사적으로도 생태적으로도 좋은 기회다.

김정호 수의사

야생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동물원’ 청주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수의사로서 일하고 있다.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수의대 졸업 당시 야생동물을 치료하며 사는 직업이 없어 대안으로 동물원에 입사했다. 동물원이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돕는 야생동물 치료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저서로는 <코끼리 없는 동물원>(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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