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딥시크의 충격으로 전 세계가 요동쳤다. R1 모델이 오픈소스로 공개된 후 앱스토어 1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생성형 인공지능(AI) 분야 최고 기술로 인정받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미래 전망에 의문이 드리워지면서 관련 주가가 급락했다. 지금까지 폐쇄 소스 전략을 취했던 오픈AI의 샘 올트먼 조차도 “지금까지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 있었다”고 자인하며 오픈소스 방식으로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많은 나라에서 정보 보안 우려 등으로 사용 금지령이 내리는 등 직접적인 경계의 움직임도 크다. 여기에 딥시크 기술은 과장이라는 주장도 다양한 근거를 갖고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논란은 역설적으로 딥시크의 충격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딥시크는 공개된 논문을 통해 전문가 혼합, 사고 연결, 증류 학습 등의 핵심기술을 소개했다. 모두 기존에 있던 기술들이다. 딥시크는 이를 조합해 예상을 뛰어넘는 혁신을 내놓았는데, 마치 과거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딥시크의 창업자 량원펑은 이 정도의 혁신은 실리콘 밸리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금방 따라잡힐 수 있는 기술이고, 이 제품으로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고도 강조한다. 딥시크 기술 자체보다도 그의 이러한 선포가 더욱 놀랍다.
량원펑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중국은 지금까지 서구사회가 이뤄낸 기술적 혁신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데만 능했다. 이제는 기술 혁신의 수혜자가 아니라 공헌자로 바뀌어야 한다” “기술 혁신에 필요한 것은 자본이 아니라 도전해 보겠다는 자신감이다. 자본이 조건이라면 지금까지 대기업만이 기술 혁신을 해왔을 것이다” “세계 최고 AI 인재들은 중국에서 일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국내 토종 인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중국 토종 인재 양성에 투자했다”
이러한 발언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왔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단기간의 사업적 성과에 집중한 나머지 근원적인 연구개발과 기술 혁신에는 소홀했다. 암묵적으로 서구 선진국이 혁신 기술을 내놓으면 이를 따라가며 특정 응용 분야에서 수익을 내는 데 집중해왔다.
혁신을 추구하면 단기간에는 투자 대비 수익률이 낮아질 수 있다. 그러나 혁신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이류 국가로 남고, 영원히 종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세계를 놀라게 했던 혁신 기술은 무엇인가? 1994년 256메가비트(Mb) D램 세계 최초 개발, 1996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이동통신 세계 최초 상용화 등 모두 30년 전 일이다. 그 이후로 뚜렷한 혁신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우리도 세계 최초의 혁신 기술(First Mover)을 내놓아야 한다. 호기심과 창의적 비전으로 동기 부여되는 사회,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이 뒤따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혁신 기술은 자본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몇몇 선도 대기업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과 호기심으로 움직이는 중소·중견 스타트업 생태계가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한 생태계 조성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 엔비디아와 TSMC의 성공조차도 한 회사의 성공이 아닌 생태계 전체의 성공임을 알아야 한다. 이제는 우리도 세계 시장을 목표로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량원펑은 중국 내 순수 토종 인재를 양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의대·치대·한의대를 채운 후 공대를 선택하는 현실, 100명의 국내 인력 양성보다 세계 최고 인재 1명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라는 왜곡된 분위기, 열정·호기심보다는 학벌·경력을 중시하는 채용·인사 관행 등이 문제다. 이제 우리도 국내 토종 인재 양성에 관심을 기울이며, 꿈과 비전으로 도전할 자신감을 심어주는 산업환경과 인재 양성 정책이 필요하다.
중국 딥시크 기술의 충격에는 과장된 면도 있다. 그러나 량원펑이 던진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가 지금처럼 근원적 기술 혁신에 도전하지 않고 열악한 생태계를 방치하며 국내 토종 인재 양성에 무관심하다면, 우리는 기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점점 위기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신현철 반도체공학회 회장·광운대 반도체시스템공학부 교수 hshin@kw.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