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지 룰과 세수 기반의 복원

2025-06-22

대한민국 재정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윤석열 정부와 최상목 부총리가 내세운 ‘건전재정’ 기조가 오히려 재정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정부는 지출을 줄이며 긴축 기조를 유지했다고 자평하지만, 세수 감소가 지출 감소를 훨씬 웃돌면서 적자 규모는 역대급 수준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재정이 제 역할을 못하는 동시에 재정적자도 2024년 관리재정수지 기준 100조원을 상회했다.

최상목의 기재부는 세수 부족 현상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기는커녕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이 덮었다. 재정증권 발행 현황은 ‘열린재정’ 사이트에서 작년 6월 이후로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 이는 재정 운용의 투명성을 해치는 심각한 문제다. 2023년부터 한국은행으로부터 역대급 대규모 대출을 받아왔다. 2023년 117조원, 2024년 173조원을 누적으로 빌렸고, 올해 4월까지도 70조원을 넘어 작년보다 속도가 빠르다. 이번 추경에서도 세수 예측이 틀려 수정해야 할 부분이 적어도 1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려면 세입경정이 불가피해 보이지만, 경기가 반등하지 않는다면 이 부분도 더 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세수 사정이 어려워진 첫 번째 이유는 의도적으로 보이는 세입 예측의 실패다. 윤석열 정부가 마치 건전재정을 달성한 것처럼 보이려면 국채 발행을 줄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세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해야 한다. 세수 전망 과정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가정을 밀어넣어 장밋빛 세수 전망을 내놓는다. 결과적으로 세수 결손은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려고 기금에서 ‘여유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가져오고, 의도적 불용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두 번째는 경제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세제는 부동산 보유세같이 자산에 과세하거나 부가가치세같이 소비에 과세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소득세와 법인세같이 소득을 기반으로 과세된다. 자산의 가치와 소비도 결국 소득과 연동돼 있어 세수와 소득은 안정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관계를 세수탄성치라고 한다. 우리 세수탄성치는 1 정도로, 국민총생산이 1% 늘면 국세 수입도 1% 정도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는 누진제도로 인해 소득보다 빠르게 세수가 증가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3년간 명목소득은 2022년 2324조원에서 2024년 2557조원으로 연평균 5% 가까이 성장했다. 하지만 국세는 395조원에서 336조원으로 연간 7% 이상 감소했다. 이와 같은 큰 폭의 세수 감소는 대규모 감세를 제외하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초기부터 법인세율 인하, 세액공제의 적극적 도입, 종합부동산세 조정,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각종 감세정책을 추진해왔다. 이러한 정책들이 세수 기반을 크게 훼손했다. 법인세율 1%포인트 인하에 그쳤다는 변명을 하지만, 세율 외에도 다양한 비과세·감면 조치로 세부담을 크게 줄여주었다. 2019년 전까지 대체로 14%대였던 국세감면율이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16%를 웃돌게 됐다. 기재부가 제출한 공식 국세감면율은 법에서 정한 법정한도를 매년 큰 폭으로 어겨왔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감세정책들이 경제성장이나 투자 증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감세를 통한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고소득층과 대기업의 현금 보유만 늘어났을 뿐, 실질적인 경제 활성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세수만 줄어들고 경제적 효과는 미미한 채로 재정적자만 커진 셈이다.

재정의 진짜 역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세입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경제학의 ‘램지 룰’에 따르면 ‘넓은 세원에 낮은 세율로 과세’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증세가 어려운 정치적 환경을 고려해보았을 때 세율을 무작정 올리기보다는 세입 기반 자체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우선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감세 조치들을 정상화해야 한다.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집중된 세제 혜택을 재검토하고, 조세 형평성을 회복해야 한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평가를 통해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감세 조치를 원상 복구시켜나가야 한다. 인공지능 기반 경제성장에 맞는 새로운 과세 체계 구축,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의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디지털 플랫폼 기업 수익에 대한 과세, 가상자산 거래에 대한 체계적 과세 방안 마련 등으로 새로운 세원도 발굴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세원을 넓히면 세율을 크게 올리지 않고도 안정적인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 대한민국 재정이 제 기능을 회복하고 허울뿐인 구호에서 벗어나 현실에 기반한 조세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안정적인 세수 기반의 복원이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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