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울산 어린이들의 독립운동-적호소년단의 약속

2024-09-26

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눈을 피해, 교과서 제목을 엉뚱한 다른 이름으로 바꾸는 장난을 해본 적 있나요? 수업 시간에 공부 말고는 다 재밌는 일이 되지요. 교과서 이름 바꾸기에 창의력, 어휘력 그리고 미적 감각을 최대한 발휘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약 100년 전인 1920년대에도 교과서 제목 바꾸기에 진심이었던 울산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진심이 담겨있는 일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제목을 바꾼 교과서는 ‘국어독본(國語讀本)’이라는 일본어책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책 표지를 살살 문질러 ‘국(國)’자를 지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일(日)’자를 써넣었습니다. 일본어를 우리나라의 국어로 배울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 교사에게 들키면 큰 벌을 받게 될 것이 뻔한 일입니다. 하지만 함께하는 친구가 있어 용기를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교과서의 이름을 바꾸어 저항 정신을 표현한 이들은 ‘적호소년단’의 단원들입니다. 적호소년단은 1926년에 울산 동구 지역에서 만들어진 소년운동 단체로, 회원 대부분이 보성학교 출신이었습니다.

적호소년단은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사람들을 위해 야학을 열었습니다. 연극 공연과 음악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어둡고 차가운 시절에 태어난 아이들이지만 함께했기에 밝은 곳을 향할 수 있었을 테지요. 밤을 밝혀 글을 배우고, 희망을 노래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라 뭉클한 마음이 듭니다.

적호소년단은 더 과감한 일도 벌였습니다. 오래전부터 일산진 마을 사람들이 사용하던 약수터인 ‘물탕’에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일본인들이 ‘물탕’에 휴게소라고 적힌 건물을 짓고 한국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소년들은 산 위에서 큰 바위를 굴려 휴게소를 파괴해 버렸습니다.

적호소년단은 세 가지 약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인격을 완성한다. 둘째, 정의를 위해 서로 돕는다. 셋째,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이 했던 일들 속에 소년단의 약속들이 보입니다. 함께 배우고 익혀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자 했고, 정의를 위해 무거운 돌을 굴렸습니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고 약속한 어린이들의 독립운동입니다.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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