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 할복 사건

2025-11-24

1970년 11월 25일, 점심시간을 앞둔 일본 도쿄 중심가 이치가야의 육상 자위대 본부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사진) 발코니에서 연설을 시작한 것이다. 30분간 자신의 뜻을 설명하겠다던 그는 10분도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정작 자위대원들이 냉소와 야유로 일관했기 때문이었다. 정변이 실패했음을 확인한 그는 육상 자위대 총감실로 돌아왔다. 이미 납치해놓은 총감이 보는 앞에서 배를 칼로 찔렀고 동료의 조력을 받아 목을 치는 방식으로 조력 자살(셋푸쿠·切腹)했다. 그의 나이 45세의 일이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더불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왜 이런 일을 저질렀던 것일까? 그의 주장은 이렇다. 미국과 안보조약을 체결한 후 일본은 스스로 무장할 수 없는 나라, 전쟁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심지어 일본은 군대를 갖지 않는다고 헌법에 명시하기까지 했다. 이런 식으로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역사와 문화 전통을 지킬 수 없다. 그러므로 자위대가 봉기하여 헌법을 바꾸고, 타국을 침략할 수 있는 군대로 거듭나야 한다.

태평양전쟁이 일본의 패배로 끝난 지 고작 25년 만의 일이었다. 철저하게 몰락했던 일본은 미국이 제시한 세계 질서 속에서 경제 성장에 매진하고 있었다. 미국이 허락할 리 없고 일본 스스로도 원치 않았으니 평화헌법 폐지와 자위대의 국방군화가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2025년 현재다. 북·중·러의 안보 위협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미국은 세계 경찰 역할을 축소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유럽에 안보 홀로서기를 강요하며 일본의 재무장도 반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원자력 잠수함을 만들고 운용할 수 있도록 방침을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시마 유키오 같은 낭만주의가 아닌, 철저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우리의 안보 현실을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 때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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